호박꽃은 아름답다/김학철
2013.02.11 05:17
호박꽃은 아름답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학 철
예로부터 흔히 얼굴이 예쁘지 않거나 뚱뚱한 체격의 여인을 일컬어 ‘호박꽃도 꽃이냐’라고 비아냥대는 일이 많았다. 아마 이 말을 당사자가 들었다면 매우 서운타 했을 것이다. 더욱이 성깔 있는 여자였다면 버럭 화를 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결국 이 말은 여인을 꽃에 비유, 호박꽃은 예쁘지 않아 꽃 축에도 못 낀다는 말일 게다. 그런데 이 말은 당사자인 그 여인만 기분이 나빴을까, 호박이 알아들었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라고 예외일까? 나 역시 호박꽃은 어딘가 모르게 천박스럽게 여겨왔다. 그런데 수십 년간 쌓인 나의 이런 고정관념을 일순간 바꿔놓는 계기가 있었다. 나는 1년 전 시내 한 갤러리에서 전시한 어느 유명화가의 개인전을 관람한 일이 있었다. 6호~10호정도의 비교적 작은 작품들로서 소재는 호박꽃, 가지 꽃, 참외 꽃, 도라지꽃, 들국화꽃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이었다.
어느 한 작품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평소 하찮은 것으로만 여겨왔던 것들도 그림으로 그려 놓으니 예전엔 미처 몰랐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내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이 있었다. 잎사귀와 줄기, 그리고 활짝 만개한 꽃, 피어나려는 꽃, 이미 만개했다가 지려고 축 늘어진 꽃잎 등이 어우러진 ‘호박꽃’ 그림이었다.
한참 보고 있노라니 새빨간 장미가 화장을 짙게 한 서양여인상이라면, 호박꽃은 마치 노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온아우미(溫雅優美)한 기품(氣品)이 서린 전형적인 한국여인상이다. 보면 볼수록 내 맘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호박꽃이 예쁘게 느껴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려니 싶었다. 평소 그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도 이때 배웠다.
호박하면 생각나는 것이 많다. 해마다 4월초 커다란 구덩이를 판 다음 잘 숙성된 퇴비를 넣고 흙을 덮은 뒤 씨앗 또는 모종을 심는다. 그러면 초여름부터 애호박이 열린다. 겉이 녹색의 윤기가 잘잘 흐르며 촉촉하고도 예쁘장한 애호박은 내가 가장 즐겨 찾는 채소류의 하나다. 애호박을 썰어 넣고 뚝배기에서 팔팔 끓는 토종된장찌개는 생각만으로도 구미가 당긴다.
애호박나물무침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여름이 되면 연한 호박잎을 쪄서 강된장과 함께 쌈을 싸먹는데 이때 보리밥과 함께 먹으면 단연 여름철 별미다. 여름철 보양식이 따로 없다.
추석 때는 애호박을 썰어 전을 부치기도 한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 연한 호박잎과 까칠까칠한 껍질을 벗겨낸 줄기, 그리고 호박순 끝부분과 엄지손가락만하거나 조금 더 큰 애호박을 으깨어 된장국을 끓이면 맛이 그만이다. 애호박을 썰어 말린 호박고지로 만든 정월보름날 아침의 나물무침은 취, 고사리와 더불어 우리 고유의 반찬이 아니던가!
어디 이것뿐이랴. 늙은 호박은 눈이라도 오는 겨울날, 호박죽 또는 호박떡을 만들어 먹으면 간식으로는 최고다. 호박엿과 호박 차를 만드는데도 요긴하게 쓰인다.
호박의 주성분은 당질이지만 카로틴의 형태로 들어있는 풍부한 비타민 A, B, C, 칼슘, 철분, 인 등 미네랄이 균형 있게 들어있고, 특히 감기저항력과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분, 위장강화 등으로 회복기에 있는 환자나 산후부기를 빼는데도 좋다. 특히 호박씨에는 불포화지방산이 있어 동맥경화예방, 혈액순환, 노화방지효과, 간 기능 강화 등 족히 만병통치의 보약수준이다.
이와 같이 호박은 누구나 즐겨 찾는 대중들의 먹거리이고 또 가격도 저렴하고 말랑말랑하여 서민들이나 치아가 튼실하지 못한 사람도 먹기 좋은 안성맞춤의 채소다. 이점이 내가 영원히 호박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오다가다 시장에서 예쁜 애호박이나 잘 익은 늙은 호박이 눈에 띄면 사오는 버릇이 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 호박밭이다. 밭 가장자리나 울타리, 담장, 언덕배기 등 장소나 토질을 가리지 않는 덕성도 지녔다. 바야흐로 입춘도 지났다. 6월초부터는 여기저기서 웃음을 짓는 노란 호박꽃들이 우리를 반길 것이다.
이젠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은 빈말이라도 삼가야 할 일이다. 이런 말을 쓰는 것은 그간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호박에 대한 예의가 아닐 성싶기 때문이다.
호박꽃은 더 이상 미운 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2013. 1. 11.)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학 철
예로부터 흔히 얼굴이 예쁘지 않거나 뚱뚱한 체격의 여인을 일컬어 ‘호박꽃도 꽃이냐’라고 비아냥대는 일이 많았다. 아마 이 말을 당사자가 들었다면 매우 서운타 했을 것이다. 더욱이 성깔 있는 여자였다면 버럭 화를 내고도 남았을 것이다. 결국 이 말은 여인을 꽃에 비유, 호박꽃은 예쁘지 않아 꽃 축에도 못 낀다는 말일 게다. 그런데 이 말은 당사자인 그 여인만 기분이 나빴을까, 호박이 알아들었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나라고 예외일까? 나 역시 호박꽃은 어딘가 모르게 천박스럽게 여겨왔다. 그런데 수십 년간 쌓인 나의 이런 고정관념을 일순간 바꿔놓는 계기가 있었다. 나는 1년 전 시내 한 갤러리에서 전시한 어느 유명화가의 개인전을 관람한 일이 있었다. 6호~10호정도의 비교적 작은 작품들로서 소재는 호박꽃, 가지 꽃, 참외 꽃, 도라지꽃, 들국화꽃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들이었다.
어느 한 작품도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 평소 하찮은 것으로만 여겨왔던 것들도 그림으로 그려 놓으니 예전엔 미처 몰랐던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내 눈에 확 들어오는 그림이 있었다. 잎사귀와 줄기, 그리고 활짝 만개한 꽃, 피어나려는 꽃, 이미 만개했다가 지려고 축 늘어진 꽃잎 등이 어우러진 ‘호박꽃’ 그림이었다.
한참 보고 있노라니 새빨간 장미가 화장을 짙게 한 서양여인상이라면, 호박꽃은 마치 노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온아우미(溫雅優美)한 기품(氣品)이 서린 전형적인 한국여인상이다. 보면 볼수록 내 맘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호박꽃이 예쁘게 느껴진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려니 싶었다. 평소 그림을 좋아하는 나로서도 충격으로 다가왔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도 이때 배웠다.
호박하면 생각나는 것이 많다. 해마다 4월초 커다란 구덩이를 판 다음 잘 숙성된 퇴비를 넣고 흙을 덮은 뒤 씨앗 또는 모종을 심는다. 그러면 초여름부터 애호박이 열린다. 겉이 녹색의 윤기가 잘잘 흐르며 촉촉하고도 예쁘장한 애호박은 내가 가장 즐겨 찾는 채소류의 하나다. 애호박을 썰어 넣고 뚝배기에서 팔팔 끓는 토종된장찌개는 생각만으로도 구미가 당긴다.
애호박나물무침도 빼놓을 수 없다. 또 여름이 되면 연한 호박잎을 쪄서 강된장과 함께 쌈을 싸먹는데 이때 보리밥과 함께 먹으면 단연 여름철 별미다. 여름철 보양식이 따로 없다.
추석 때는 애호박을 썰어 전을 부치기도 한다.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전 연한 호박잎과 까칠까칠한 껍질을 벗겨낸 줄기, 그리고 호박순 끝부분과 엄지손가락만하거나 조금 더 큰 애호박을 으깨어 된장국을 끓이면 맛이 그만이다. 애호박을 썰어 말린 호박고지로 만든 정월보름날 아침의 나물무침은 취, 고사리와 더불어 우리 고유의 반찬이 아니던가!
어디 이것뿐이랴. 늙은 호박은 눈이라도 오는 겨울날, 호박죽 또는 호박떡을 만들어 먹으면 간식으로는 최고다. 호박엿과 호박 차를 만드는데도 요긴하게 쓰인다.
호박의 주성분은 당질이지만 카로틴의 형태로 들어있는 풍부한 비타민 A, B, C, 칼슘, 철분, 인 등 미네랄이 균형 있게 들어있고, 특히 감기저항력과 몸을 따뜻하게 하는 성분, 위장강화 등으로 회복기에 있는 환자나 산후부기를 빼는데도 좋다. 특히 호박씨에는 불포화지방산이 있어 동맥경화예방, 혈액순환, 노화방지효과, 간 기능 강화 등 족히 만병통치의 보약수준이다.
이와 같이 호박은 누구나 즐겨 찾는 대중들의 먹거리이고 또 가격도 저렴하고 말랑말랑하여 서민들이나 치아가 튼실하지 못한 사람도 먹기 좋은 안성맞춤의 채소다. 이점이 내가 영원히 호박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오다가다 시장에서 예쁜 애호박이나 잘 익은 늙은 호박이 눈에 띄면 사오는 버릇이 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지천으로 널려있는 것이 호박밭이다. 밭 가장자리나 울타리, 담장, 언덕배기 등 장소나 토질을 가리지 않는 덕성도 지녔다. 바야흐로 입춘도 지났다. 6월초부터는 여기저기서 웃음을 짓는 노란 호박꽃들이 우리를 반길 것이다.
이젠 ‘호박꽃도 꽃이냐’는 말은 빈말이라도 삼가야 할 일이다. 이런 말을 쓰는 것은 그간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호박에 대한 예의가 아닐 성싶기 때문이다.
호박꽃은 더 이상 미운 꽃이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다.
(2013.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