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날 무대에서 수필을 낭송하고/양영아
2013.09.13 08:40
수필의 날 무대에서 수필을 낭송하고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전주꽃밭정이복지관 수필창작반 양영아
어머니의 *비나리는 영원한 모양이다. 올해 수필의 날 행사에 내가 수필을 낭송하게 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다섯 명의 낭독자 중 한 명을 전라북도에 배정했다는 것도 행운이었다. 끝없는 사랑을 주시던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도와주신 게 아닐까?
갑자기 김학 교수님께서 수필의 날 행사 때 수필을 낭송하라고 하셨다. 여태껏 낭독해오던 K선배도 있고, 시 낭송 교육을 받은 P후배도 있건만 교수님은 굳이 나에게 중책을 맡기셨다. 손님이 되어 구경하는 것은 마음이 가볍다. 그러나 뭔가 의무를 갖고 참석하는 길은 부담스럽다. 나를 믿어주신 교수님께 고마움을 느끼며 누를 끼쳐 드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수필의 날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한 달을 준비했다. 15쪽 분량의 글을 6쪽으로 줄였다. 아까운 꽃잎도 잘라내고 곁가지도 다듬어야 했다. 시 낭송 법을 인터넷으로 찾아 익혔다. 음악을 들으면서 낭독을 해야 더 아름다웠다. 조용한 목소리로 낭송하기도 하고 격한 음성으로 높낮이를 조정하면서 음의 냄새를 맡았다. 내 글인데도 문장의 말미가 헷갈리곤 했다. 수필반 문우들의 응원도 한몫했다. 무대에 오를 옷까지 신경을 써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드디어 수필의 날이 돌아왔다. 오후 4시부터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백주년기념관에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전국 100개가 넘는 문학단체에서 500여명이 참석했다. 수필가 전영구 씨가 개회를 선언하고 지연희 운영위원장이 개회사를 낭독했다. ‘수필의 역사를 짓다’ 행사의 막이 열린 것이다. 얼마 전에 《수필세계》를 쓴 윤재천 수필가와 통화를 했었는데 수필의 날 선언문 낭독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역시 큰 행사여서 대 수필가와 유명 인사들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올해의 수필인상’은 이병수 수필가와 김학래 수필가가 수상했다. 나에겐 까마득히 먼 수상의 길이기에 부러움도 먼 이야기였다. 정목일 수필가의 <천 년 신라 문화유적과 수필문학>이란 특강이 있었다. 나에게 수필을 살찌우는 영양제가 되었다.
제3부 수필 낭송에서 나는 세 번째 순서로 내 작품인「꽈리와 어머니」를 낭송했다. 낮은 무대는 편안함을 느끼게 했고 객석을 비추는 불빛은 많은 수필가들의 표정을 비추고 있었다. 청중은 고요했고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노래하듯 읊어갔다.
마지막 구절,
“어머니의 얼굴에 흘렀던 그 눈물이 내 얼굴에도 자꾸자꾸 흘러내렸다.”
를 낭송할 때는 어머니의 모습이 꽈리의 그림과 함께 오버랩 되며 내 마음을 울렸다.
사람들은 어머니란 글자 앞에 나약해진다. 살아계실 때는 부모님의 고마움과 중요성을 모르더니 돌아가신 뒤 후회와 연민으로 가슴 아파한다. 우린 부모가 항상 곁에 계시리라 믿고 살았다. 때 늦은 사모곡은 우리를 얼마나 슬프게 하던가?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 즉 하다마는/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 하노라
*조홍시가(早紅柹歌)를 노래한 노계 박인로 선생도 후회하는 자식의 하나였다.
내 글을 칭찬해 주던 수필가 모두 어머니가 계셨기에 공감했을 것이다. 남자 선생님들까지 코끝이 찡했다는 말을 듣고 쑥스러워 그냥 웃었다. 모두 부모님의 속을 썩여 드렸던 못난 자신을 발견했기에 연민의 정이 컸으리라.
모르는 수필가들까지 다가와 격려의 말을 해줄 땐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멀리서 눈이 마주치면 웃는 얼굴로 인사하면서 손을 흔들어 가슴이 벅찼다. 밥을 먹으면서도 아는 척하니 몸 둘 바를 몰랐다. 부산에 사는 김정례 수필가는 내 주소와 이메일을 묻더니 자기 수필집『염소와 항아리』를 보내주셨다. 그 여류작가는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국제라이온스협회 초대 연수원장도 지냈고, 현재 부산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부산문인협회 회장을 지냈다는 서태수 작가는 나의 글을 강의 자료로 삼고 싶다면서 원본과 수필의 날 낭송했던 요약 분을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쾌히 보내줬는데 강의 자료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행사가 끝나고 안압지 야경을 구경했다. 물에 비치는 안압지의 야경이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황홀했다.
(2013.09.11.)
*비나리 : 앞길의 행복을 비는 말
*박인로가 선조 34년 9월에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찾아가 홍시 대접을 받았을 때, 회귤(懷橘) 고사(故事)를 생각하고 돌아가신 어버이를 슬퍼하여 지은 효도의 노래다. 회귤의 고사란, 중국 삼국시대 오군(吳郡) 사람 육적(陸績)이, 여섯 살 때 원술(袁術)을 찾아가서 벌어진 일화다. 원술이 귤을 먹으라고 주었는데, 육적이 귤 세 개를 몰래 품속에 품었다가 일어서면서 떨어뜨렸다. 원술이 그 연유를 묻자 어머님께 드리려고 품었다고 대답했다는 고사인데, 곧 '효도'를 뜻한다.
12장
전북대학교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전주꽃밭정이복지관 수필창작반 양영아
어머니의 *비나리는 영원한 모양이다. 올해 수필의 날 행사에 내가 수필을 낭송하게 된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다섯 명의 낭독자 중 한 명을 전라북도에 배정했다는 것도 행운이었다. 끝없는 사랑을 주시던 어머니가 하늘나라에서 도와주신 게 아닐까?
갑자기 김학 교수님께서 수필의 날 행사 때 수필을 낭송하라고 하셨다. 여태껏 낭독해오던 K선배도 있고, 시 낭송 교육을 받은 P후배도 있건만 교수님은 굳이 나에게 중책을 맡기셨다. 손님이 되어 구경하는 것은 마음이 가볍다. 그러나 뭔가 의무를 갖고 참석하는 길은 부담스럽다. 나를 믿어주신 교수님께 고마움을 느끼며 누를 끼쳐 드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준비했다.
수필의 날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한 달을 준비했다. 15쪽 분량의 글을 6쪽으로 줄였다. 아까운 꽃잎도 잘라내고 곁가지도 다듬어야 했다. 시 낭송 법을 인터넷으로 찾아 익혔다. 음악을 들으면서 낭독을 해야 더 아름다웠다. 조용한 목소리로 낭송하기도 하고 격한 음성으로 높낮이를 조정하면서 음의 냄새를 맡았다. 내 글인데도 문장의 말미가 헷갈리곤 했다. 수필반 문우들의 응원도 한몫했다. 무대에 오를 옷까지 신경을 써주니 고맙기 그지없었다.
드디어 수필의 날이 돌아왔다. 오후 4시부터 동국대학교경주캠퍼스 백주년기념관에서 행사가 시작되었다. 전국 100개가 넘는 문학단체에서 500여명이 참석했다. 수필가 전영구 씨가 개회를 선언하고 지연희 운영위원장이 개회사를 낭독했다. ‘수필의 역사를 짓다’ 행사의 막이 열린 것이다. 얼마 전에 《수필세계》를 쓴 윤재천 수필가와 통화를 했었는데 수필의 날 선언문 낭독을 하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역시 큰 행사여서 대 수필가와 유명 인사들을 먼발치에서나마 볼 수 있었다. ‘올해의 수필인상’은 이병수 수필가와 김학래 수필가가 수상했다. 나에겐 까마득히 먼 수상의 길이기에 부러움도 먼 이야기였다. 정목일 수필가의 <천 년 신라 문화유적과 수필문학>이란 특강이 있었다. 나에게 수필을 살찌우는 영양제가 되었다.
제3부 수필 낭송에서 나는 세 번째 순서로 내 작품인「꽈리와 어머니」를 낭송했다. 낮은 무대는 편안함을 느끼게 했고 객석을 비추는 불빛은 많은 수필가들의 표정을 비추고 있었다. 청중은 고요했고 나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천천히 노래하듯 읊어갔다.
마지막 구절,
“어머니의 얼굴에 흘렀던 그 눈물이 내 얼굴에도 자꾸자꾸 흘러내렸다.”
를 낭송할 때는 어머니의 모습이 꽈리의 그림과 함께 오버랩 되며 내 마음을 울렸다.
사람들은 어머니란 글자 앞에 나약해진다. 살아계실 때는 부모님의 고마움과 중요성을 모르더니 돌아가신 뒤 후회와 연민으로 가슴 아파한다. 우린 부모가 항상 곁에 계시리라 믿고 살았다. 때 늦은 사모곡은 우리를 얼마나 슬프게 하던가?
반중(盤中) 조홍(早紅)감이 고와도 보이나다/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 즉 하다마는/품어가 반길 이 없을 새 /글로 설워 하노라
*조홍시가(早紅柹歌)를 노래한 노계 박인로 선생도 후회하는 자식의 하나였다.
내 글을 칭찬해 주던 수필가 모두 어머니가 계셨기에 공감했을 것이다. 남자 선생님들까지 코끝이 찡했다는 말을 듣고 쑥스러워 그냥 웃었다. 모두 부모님의 속을 썩여 드렸던 못난 자신을 발견했기에 연민의 정이 컸으리라.
모르는 수필가들까지 다가와 격려의 말을 해줄 땐 기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멀리서 눈이 마주치면 웃는 얼굴로 인사하면서 손을 흔들어 가슴이 벅찼다. 밥을 먹으면서도 아는 척하니 몸 둘 바를 몰랐다. 부산에 사는 김정례 수필가는 내 주소와 이메일을 묻더니 자기 수필집『염소와 항아리』를 보내주셨다. 그 여류작가는 문학 활동뿐만 아니라 국제라이온스협회 초대 연수원장도 지냈고, 현재 부산지방법원 조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부산문인협회 회장을 지냈다는 서태수 작가는 나의 글을 강의 자료로 삼고 싶다면서 원본과 수필의 날 낭송했던 요약 분을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쾌히 보내줬는데 강의 자료로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
행사가 끝나고 안압지 야경을 구경했다. 물에 비치는 안압지의 야경이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 황홀했다.
(2013.09.11.)
*비나리 : 앞길의 행복을 비는 말
*박인로가 선조 34년 9월에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을 찾아가 홍시 대접을 받았을 때, 회귤(懷橘) 고사(故事)를 생각하고 돌아가신 어버이를 슬퍼하여 지은 효도의 노래다. 회귤의 고사란, 중국 삼국시대 오군(吳郡) 사람 육적(陸績)이, 여섯 살 때 원술(袁術)을 찾아가서 벌어진 일화다. 원술이 귤을 먹으라고 주었는데, 육적이 귤 세 개를 몰래 품속에 품었다가 일어서면서 떨어뜨렸다. 원술이 그 연유를 묻자 어머님께 드리려고 품었다고 대답했다는 고사인데, 곧 '효도'를 뜻한다.
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