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과 베풂, 그 쉽고도 어려운 일/정성려
2013.10.05 06:23
나눔과 베풂, 그 쉽고도 어려운 일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정성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넉넉하지 않은 돈을 아껴 불우한 이웃을 돕는 미담들을 방송이나 신문에서 많이 듣고 보았다.
봉사는 남을 위해 몸과 마음을 헌신하는 일이다. 많은 봉사단체들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물질적인 봉사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진 자는 더 갖기를 원하는 게 재산이 아니던가. 재산이 많다고 해서 남을 돕는 일에 후한 것도 아니고 재산이 적다고 해서 인색한 것도 아니다.
어제는 내가 다니는 송천성당의 생일날이다. 우리 성당구역 내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 미사를 드리고 청, 백, 홍, 황 팀으로 나누어 체육대회를 열며 본당의 날 행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려 체육대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강당으로 옮겨 미사를 드렸다. 점심시간 이후 몇 가지 실내경기와 흥겨운 오락시간을 가진 뒤 끝내기로 하고 점심식사가 시작 되었다. 교우들이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구역식구들끼리 둥글게 모여 앉아 먹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교우들끼리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오늘 신부님이 강론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듯했다. 전달 사항을 모르고 미처 도시락을 준비 해 오지 않은 교우들을 챙기고, 홀로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도시락까지 준비해서 챙기는 모습들을 볼 때, 복음 말씀이 신부님을 통해 잘 전달된 것 같았다.
미사시간에 신부님이 복음을 읽으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고운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 부잣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했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리고 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뜨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가난했던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을 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했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해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가 가로 놓여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가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도 건너오려 해도 올 수가 없다.”
복음말씀을 들으며 믿음이 너무도 부족한 나는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럼 가진 자(부자)는 지옥으로 가고 없는 자(거지)는 천국으로 간단 말인가.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남들 놀 때 일해서 부자가 된 것도 죄가 될까?’ 하며 잠시 의문이 생겼다. 신부님의 강론이 시작되었다. 다른 날보다 귀를 쫑긋 세우고 말씀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고 자세히 들었다.
부자라서 죄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부자는 주위에 가난한 이를 보고도 모른 체했던 것이 죄가 된 것이다. ‘아하, 그렇구나!’ 나눔과 베풂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었다. 이렇듯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냥 지나친 일들이 죄가 되는 수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많은 죄를 짓고 있지 않은가? 살아온 뒤를 돌아보니 너무도 많은 잘못 뿐이고 죄를 짓고 있는 듯했다.
오래 전,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앞을 못 보는 장님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에는 바가지를 들고 사람들 앞을 지나 내게로 다가왔다. 다가오는 거지를 보고도 못 본 척 외면하지 않았던가. 일부러 거지행세를 하고 다닐 뿐이라고, 손은 어느새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었지만 냉정하게 돌아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은 자동차운행 도중에 네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장애인 껌팔이가 다가와서 껌을 팔아달라고 차안으로 껌을 내밀었지만, 그때도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또 어느 날 시골 5일장에서 다리가 없는 장애인을 만났다. 온 몸을 고무로 칭칭 동여매고 도로를 기어 다니며 구걸하는 장애인이었다. 5일장에서 산 물건들이 양손에 무겁게 들려 있다는 이유로 망설이다가 외면하고 돌아서서 그냥 왔다.
복음 말씀을 듣고 보니 이런 나의 행동들이 모두 죄인 것을……. 마음은 괴로웠지만 이미 지난 일을 어쩌랴. 좋은 일도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다. 나는 좋은 일을 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앞으로는 욕심을 버리고 나누는 일에 힘써야겠다. 깨달음을 준 오늘의 복음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나눔과 베풂을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13. 9. 30.)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정성려
남을 돕는다는 것은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힘들게 일을 하면서도 넉넉하지 않은 돈을 아껴 불우한 이웃을 돕는 미담들을 방송이나 신문에서 많이 듣고 보았다.
봉사는 남을 위해 몸과 마음을 헌신하는 일이다. 많은 봉사단체들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하지만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물질적인 봉사를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진 자는 더 갖기를 원하는 게 재산이 아니던가. 재산이 많다고 해서 남을 돕는 일에 후한 것도 아니고 재산이 적다고 해서 인색한 것도 아니다.
어제는 내가 다니는 송천성당의 생일날이다. 우리 성당구역 내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을 빌려 미사를 드리고 청, 백, 홍, 황 팀으로 나누어 체육대회를 열며 본당의 날 행사를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려 체육대회는 무산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강당으로 옮겨 미사를 드렸다. 점심시간 이후 몇 가지 실내경기와 흥겨운 오락시간을 가진 뒤 끝내기로 하고 점심식사가 시작 되었다. 교우들이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구역식구들끼리 둥글게 모여 앉아 먹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교우들끼리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은 참으로 보기 좋았다.
오늘 신부님이 강론하신 말씀을 실천하는 듯했다. 전달 사항을 모르고 미처 도시락을 준비 해 오지 않은 교우들을 챙기고, 홀로 사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도시락까지 준비해서 챙기는 모습들을 볼 때, 복음 말씀이 신부님을 통해 잘 전달된 것 같았다.
미사시간에 신부님이 복음을 읽으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고운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 부잣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의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했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리고 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뜨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가난했던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을 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했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해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가 가로 놓여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가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도 건너오려 해도 올 수가 없다.”
복음말씀을 들으며 믿음이 너무도 부족한 나는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그럼 가진 자(부자)는 지옥으로 가고 없는 자(거지)는 천국으로 간단 말인가. 남들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남들 놀 때 일해서 부자가 된 것도 죄가 될까?’ 하며 잠시 의문이 생겼다. 신부님의 강론이 시작되었다. 다른 날보다 귀를 쫑긋 세우고 말씀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정신을 집중하고 자세히 들었다.
부자라서 죄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부자는 주위에 가난한 이를 보고도 모른 체했던 것이 죄가 된 것이다. ‘아하, 그렇구나!’ 나눔과 베풂을 가르쳐 주는 말씀이었다. 이렇듯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냥 지나친 일들이 죄가 되는 수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많은 죄를 짓고 있지 않은가? 살아온 뒤를 돌아보니 너무도 많은 잘못 뿐이고 죄를 짓고 있는 듯했다.
오래 전,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앞을 못 보는 장님이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에는 바가지를 들고 사람들 앞을 지나 내게로 다가왔다. 다가오는 거지를 보고도 못 본 척 외면하지 않았던가. 일부러 거지행세를 하고 다닐 뿐이라고, 손은 어느새 호주머니에 들어가 있었지만 냉정하게 돌아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은 자동차운행 도중에 네거리에서 신호대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장애인 껌팔이가 다가와서 껌을 팔아달라고 차안으로 껌을 내밀었지만, 그때도 비싸다는 이유만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또 어느 날 시골 5일장에서 다리가 없는 장애인을 만났다. 온 몸을 고무로 칭칭 동여매고 도로를 기어 다니며 구걸하는 장애인이었다. 5일장에서 산 물건들이 양손에 무겁게 들려 있다는 이유로 망설이다가 외면하고 돌아서서 그냥 왔다.
복음 말씀을 듣고 보니 이런 나의 행동들이 모두 죄인 것을……. 마음은 괴로웠지만 이미 지난 일을 어쩌랴. 좋은 일도 기회가 찾아오는 것 같다. 나는 좋은 일을 할 기회를 놓친 셈이다. 앞으로는 욕심을 버리고 나누는 일에 힘써야겠다. 깨달음을 준 오늘의 복음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며 나눔과 베풂을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2013.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