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정성려
2013.10.09 07:48
도토리묵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정성려
“가을이면 뭐가 가장 생각날까?”
고향친구들과 모임 날이다. 한 친구가 뜬금없이 가을이면 생각나는 것들이 뭐냐고 물었다.
“파란 하늘, 고추잠자리, 코스모스, 단풍…….”
하나씩 가을에 대한 것들을 말했다. 나는 잠시 조용한 틈을 타 큰소리로 말을 했다.
“도토리!”
친구들은 나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도토리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웃었을까? 아니면 겨우 도토리를 생각했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을까?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참! 너희 엄마가 쑨 도토리묵은 정말 맛있었는데!”
한 친구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우리 어머니의 도토리묵 맛을 기억하는지 말을 꺼냈다. 어머니의 도토리묵 맛은 동네에서 소문이 났었다. 동네뿐만 아니라 멀리 사는 집안 친척들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어머니를 도와드리며 어깨너머로 배운 도토리묵 맛을 결혼 후에 내가 흉내를 내고 있다.
한 친구는 가을을 타는가 보다. 널브러지게 가을 이야기를 하더니만 나이를 언제 이렇게나 많이 먹었는지 모르겠단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며 괜한 세월을 탓하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면서도 가을이 오면 좋다고 한다.
친구가 가을을 좋아하듯 나도 가을이 오면 좋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네 계절마다 특색이 있어 모두 좋지만 특히 가을이 좋은 이유가 있다. 도토리 때문이다. 여름 끝자락이면 먼 산을 바라보며 가을이 어디쯤 오고 있을까 기다려진다. 아니, 가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도토리가 통통 여물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도토리와 무슨 인연이 있기에 도토리가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도토리묵을 쑤기 위해서다.
며칠 전, 출근하며 사무실에 도토리묵을 가지고 갔다.
“와! 맛있다.”
“정말 맛있다.”
도토리묵을 먹으며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시중에서 사먹는 것과는 사뭇 맛이 다르겠지만 아마 내가 직접 쑤었다니까 더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텃밭에 심어 놓은 파를 뽑아 잘게 썰어 넣고, 동생이 농사를 지어 보내준 참깨로 만든 깨소금과 옆집 아줌마가 준 국산 참기름을 듬뿍 넣어 양념간장을 만들었다. 젓가락으로 찍어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고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도토리묵에 양념간장을 뿌려 먹으면 씁쓸하고 쫀득거리는 그 맛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나 할까?
하하 호호 웃으며 맛있게 먹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행복했다. 이래서 힘들어도 도토리묵을 자꾸 쑤게 된다. 도토리로 묵을 쑤려면 여러 번 손이 가고 완성되기까지는 무척 힘이 든다. 또한 도토리묵은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하여 힘이 드는 음식이다. 누구든 만드는 과정을 보면 만들겠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기에 힘이 들어도 여럿이 나누어 먹는 재미로 자꾸 만들게 된다. 이 집 저 집 나누어 먹을 때면 기분이 더 좋다.
본 흉은 낸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도와주며 도토리묵을 쑤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고 어머니께서 도토리묵을 만드는 과정과 방법, 물의 비율을 가르쳐 준 적은 없다. 어머니의 일을 도우며 보았을 뿐이다. 어머니도 비율을 계산해가며 도토리묵을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실수 없이 맛있는 묵을 만들어 내놓았다.
결혼을 하고 얼마 뒤에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왔다.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기억을 더듬으며 도토리묵을 쑤어 볼 요량이었다. 눈짐작으로 처음 쑤어본 도토리묵인데 어머니의 솜씨만큼이나 맛있게 잘 되었다. 그때의 기분은 짜릿하고 좋았다. 도토리묵을 드신 시어머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시어머님 친구들을 초대하여 대접하며 자랑까지 하셨다. 그래서 나도 동네에서 도토리묵 잘 쑤는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는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도토리묵을 쑤셨다. 요즘은 좋은 기계가 발명되어 방앗간에서 빻아주니까 그 때에 비교하면 힘을 덜 들이고 손쉽게 만들 수 있다. 그 옛날 어머니는 도토리묵을 쑬 때는 도토리를 절구에 넣고 빻아서 체에 치고 시루에 넣고 물을 부어주며, 까맣고 독한 물을 빼냈다. 어느 정도 우려지면 큰 돌로 만든 넓적한 확독에 넣고 강변에서 주워온 둥글넓적하고 반질반질한 작은 돌로 오래오래 갈아 녹말을 빼내는 작업을 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련히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니 알 수 있을 것 같다. 허리가 아파 빨리 펴지 못하고 꾸부정하시던 그 모습이 도토리묵을 쑬 때마다 생각난다.
도토리묵을 만들자면 힘이 들지만 남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전북대 평생교육원 목요반 문우님들과 함께 먹으려고 어젯밤도 늦게까지 도토리묵을 쑤었다. 어머니께 배운 도토리묵 맛을 언제까지 흉내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씁쓸하고 고소한 그 맛을 잃지 않고 내 손으로 오래까지 묵 맛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2013.10.9.)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정성려
“가을이면 뭐가 가장 생각날까?”
고향친구들과 모임 날이다. 한 친구가 뜬금없이 가을이면 생각나는 것들이 뭐냐고 물었다.
“파란 하늘, 고추잠자리, 코스모스, 단풍…….”
하나씩 가을에 대한 것들을 말했다. 나는 잠시 조용한 틈을 타 큰소리로 말을 했다.
“도토리!”
친구들은 나를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도토리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워서 웃었을까? 아니면 겨우 도토리를 생각했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을까? 나도 같이 따라 웃었다.
“참! 너희 엄마가 쑨 도토리묵은 정말 맛있었는데!”
한 친구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우리 어머니의 도토리묵 맛을 기억하는지 말을 꺼냈다. 어머니의 도토리묵 맛은 동네에서 소문이 났었다. 동네뿐만 아니라 멀리 사는 집안 친척들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어머니를 도와드리며 어깨너머로 배운 도토리묵 맛을 결혼 후에 내가 흉내를 내고 있다.
한 친구는 가을을 타는가 보다. 널브러지게 가을 이야기를 하더니만 나이를 언제 이렇게나 많이 먹었는지 모르겠단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며 괜한 세월을 탓하고 트집을 잡았다. 그러면서도 가을이 오면 좋다고 한다.
친구가 가을을 좋아하듯 나도 가을이 오면 좋다.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네 계절마다 특색이 있어 모두 좋지만 특히 가을이 좋은 이유가 있다. 도토리 때문이다. 여름 끝자락이면 먼 산을 바라보며 가을이 어디쯤 오고 있을까 기다려진다. 아니, 가을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도토리가 통통 여물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도토리와 무슨 인연이 있기에 도토리가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도토리묵을 쑤기 위해서다.
며칠 전, 출근하며 사무실에 도토리묵을 가지고 갔다.
“와! 맛있다.”
“정말 맛있다.”
도토리묵을 먹으며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시중에서 사먹는 것과는 사뭇 맛이 다르겠지만 아마 내가 직접 쑤었다니까 더 맛있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텃밭에 심어 놓은 파를 뽑아 잘게 썰어 넣고, 동생이 농사를 지어 보내준 참깨로 만든 깨소금과 옆집 아줌마가 준 국산 참기름을 듬뿍 넣어 양념간장을 만들었다. 젓가락으로 찍어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고 흔들어도 떨어지지 않는 도토리묵에 양념간장을 뿌려 먹으면 씁쓸하고 쫀득거리는 그 맛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고나 할까?
하하 호호 웃으며 맛있게 먹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니 너무 행복했다. 이래서 힘들어도 도토리묵을 자꾸 쑤게 된다. 도토리로 묵을 쑤려면 여러 번 손이 가고 완성되기까지는 무척 힘이 든다. 또한 도토리묵은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하여 힘이 드는 음식이다. 누구든 만드는 과정을 보면 만들겠지만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기에 힘이 들어도 여럿이 나누어 먹는 재미로 자꾸 만들게 된다. 이 집 저 집 나누어 먹을 때면 기분이 더 좋다.
본 흉은 낸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도와주며 도토리묵을 쑤는 것을 보았다. 그렇다고 어머니께서 도토리묵을 만드는 과정과 방법, 물의 비율을 가르쳐 준 적은 없다. 어머니의 일을 도우며 보았을 뿐이다. 어머니도 비율을 계산해가며 도토리묵을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실수 없이 맛있는 묵을 만들어 내놓았다.
결혼을 하고 얼마 뒤에 산에서 도토리를 주워왔다. 어머니가 하시던 대로 기억을 더듬으며 도토리묵을 쑤어 볼 요량이었다. 눈짐작으로 처음 쑤어본 도토리묵인데 어머니의 솜씨만큼이나 맛있게 잘 되었다. 그때의 기분은 짜릿하고 좋았다. 도토리묵을 드신 시어머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시어머님 친구들을 초대하여 대접하며 자랑까지 하셨다. 그래서 나도 동네에서 도토리묵 잘 쑤는 사람이 되었다.
어머니는 집안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도토리묵을 쑤셨다. 요즘은 좋은 기계가 발명되어 방앗간에서 빻아주니까 그 때에 비교하면 힘을 덜 들이고 손쉽게 만들 수 있다. 그 옛날 어머니는 도토리묵을 쑬 때는 도토리를 절구에 넣고 빻아서 체에 치고 시루에 넣고 물을 부어주며, 까맣고 독한 물을 빼냈다. 어느 정도 우려지면 큰 돌로 만든 넓적한 확독에 넣고 강변에서 주워온 둥글넓적하고 반질반질한 작은 돌로 오래오래 갈아 녹말을 빼내는 작업을 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련히 떠오르는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보니 알 수 있을 것 같다. 허리가 아파 빨리 펴지 못하고 꾸부정하시던 그 모습이 도토리묵을 쑬 때마다 생각난다.
도토리묵을 만들자면 힘이 들지만 남들과 나누어 먹을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다. 전북대 평생교육원 목요반 문우님들과 함께 먹으려고 어젯밤도 늦게까지 도토리묵을 쑤었다. 어머니께 배운 도토리묵 맛을 언제까지 흉내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씁쓸하고 고소한 그 맛을 잃지 않고 내 손으로 오래까지 묵 맛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2013.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