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 말한다/김상권
2013.10.11 06:43
돌이 말한다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상권
베란다 한쪽 구석에 돌무더기가 있다. 십여 년 전에 계곡이나 강가 또는 바닷가에 갔을 때 주워온 돌들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하잘 것 없는 돌로 보여 거들떠보지도 않던 돌인데, 내 눈엔 보통 돌과는 다르게 보여 주워온 돌들이다. 어쩌면 운이 좋은 돌이라고나 할까. 내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계곡이나 강가나 바닷가에서 자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오래도록 방치해뒀던 둘 가운데 세 개를 골라 수석 집에 갔다. 좌대를 만들기 위해서다. 베란다에 내버려두었을 때는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던 돌이 좌대에 앉혀 놓으니 생각보다 훨씬 멋져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애착이 가는 돌은 계곡에서 주운 거북이 모양의 돌과 강가에서 주은 대나무 무늬가 있는 돌 그리고 바닷가에서 주은 깨돌이다. 길이가 한 뼘 정도의 거북이모양의 돌은 얼룩소처럼 회색바탕에 하얀 빛깔이 알맞게 섞여있는 마치 거북이가 기어가는 모습이다. 수석 주인의 말에 따르면 잡석이란다. 나는 돌의 종류와 질에 대해서 문외한이기 때문에 모양만 보고서 마음에 들어 주어왔을 뿐이다.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돌은 대나무모양의 무늬가 있는 돌이다. 옆으로 놓고 볼 때는 물결무늬처럼 보였는데 세워 놓으니 그럴듯한 대나무 모양이다. 높이가 15센티미터, 폭이 10센티미터 정도의 아담한 크기인데, 검은색 바탕에 흰색의 대나무 줄기와 잎이 앞면과 뒷면에 새겨져 있다. 이처럼 절묘한 표현은 이름난 화가라도 그려내지 못할 정도의 한 폭의 아름다운 석죽(石竹)이다. 어떻게 이런 신기한 문양이 만들어졌을까.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분명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사실 나는 농촌에서 자랐기에 수석을 볼 기회가 없었다. 20여 년 전 J로부터 작은 진열장과 함께 거기에 들어갈 정도의 수석 31점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수석과 만났지만 별 관심은 없었다. 내가 직접 주운 돌을 받침대에 올리면서 수석에 대해서 새롭게 눈을 떴다. 진열장에 있는 돌을 하나씩 꺼내어 먼지를 털고 닦아주면서 돌의 생김새와 돌에 새겨진 무늬 등을 관찰했다. 크기는 물론 모양과 색깔과 무늬들이 다 달랐다. 이들 돌에는 구름, 국화, 나이테, 물결, 이름 모를 풀 같은 무늬 등이 새겨져 있어,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어떻게 그런 모양과 색깔과 무늬들이 만들어졌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걸 보고 자연의 조화 또는 자연의 신비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연이 빚어낸 명품 중의 명품이 아닌가. 하나같이 정이 가는 돌들이다. 수억 년 동안 물에 씻기고 패이고 닳아 둥글게 또는 여러 모양으로 몸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들이 날 보고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수석은 장식용이다. 돌 모양이 어떤 사물을 닮았다든지 또는 어떤 모양의 무늬가 있든지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같은 모양이나 문양일지라도 질이나 크기 또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대우가 달라지기도 한다. 수석은 어쩌면 선택받은 돌이랄까. 그래서 안방에서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지도 모른다.
돌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크기와 모양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 옛날에는 성(城)을 쌓거나 탑을 세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돌이었다. 주춧돌로 쓰이기도 하고, 댐을 막거나 축대를 쌓거나 징검다리를 놓는데도 쓰인다. 또한, 건축 재료나 조각하는데도 쓰인다. 심지어는 돌을 바수어 모래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다시 말하면 사용되지 않은 돌이 없다는 말이다. 돌은 크든 작든, 둥근 것이든 모난 것이든, 잘 생겼든 못 생겼든 모두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이 쓸모가 많은 돌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면 틀린 말일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가난한 이와 부자. 권력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날씬한 사람과 뚱뚱한 사람, 예쁜 사람과 미운 사람 가릴 것 없이 다들 나름의 자기 할 일이 따로 있다. 돌멩이 하나에도 쓰임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황금 보기를 돌 같이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돌보기를 황금같이 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금도 돌 속에서 찾아내지 않는가. 귀한 것으로 치면 단연 금이겠지만 쓰임새로 치면 돌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돌이 금보다 더 소중하지 않을까. 만약 금이 임금이라면 돌은 백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백성이 없는 임금이 있을 수 있는가. 그래서 돌을 황금같이 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백성을 황금같이 보라는 말이다.
돌을 바라보고 있다. 돌이 내게 말을 건넨다.
“억지를 부리지 말고 기다려라. 지금의 자기 자리에서 만족하며 온 힘을 기울여라. 자연에 감사하고 순응하라. 당신은 쓸모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21013. 7. 10.)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김상권
베란다 한쪽 구석에 돌무더기가 있다. 십여 년 전에 계곡이나 강가 또는 바닷가에 갔을 때 주워온 돌들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하잘 것 없는 돌로 보여 거들떠보지도 않던 돌인데, 내 눈엔 보통 돌과는 다르게 보여 주워온 돌들이다. 어쩌면 운이 좋은 돌이라고나 할까. 내 눈에 띄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계곡이나 강가나 바닷가에서 자고 있을 테니 말이다.
오래도록 방치해뒀던 둘 가운데 세 개를 골라 수석 집에 갔다. 좌대를 만들기 위해서다. 베란다에 내버려두었을 때는 그다지 돋보이지 않았던 돌이 좌대에 앉혀 놓으니 생각보다 훨씬 멋져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애착이 가는 돌은 계곡에서 주운 거북이 모양의 돌과 강가에서 주은 대나무 무늬가 있는 돌 그리고 바닷가에서 주은 깨돌이다. 길이가 한 뼘 정도의 거북이모양의 돌은 얼룩소처럼 회색바탕에 하얀 빛깔이 알맞게 섞여있는 마치 거북이가 기어가는 모습이다. 수석 주인의 말에 따르면 잡석이란다. 나는 돌의 종류와 질에 대해서 문외한이기 때문에 모양만 보고서 마음에 들어 주어왔을 뿐이다. 다음으로 눈길을 끄는 돌은 대나무모양의 무늬가 있는 돌이다. 옆으로 놓고 볼 때는 물결무늬처럼 보였는데 세워 놓으니 그럴듯한 대나무 모양이다. 높이가 15센티미터, 폭이 10센티미터 정도의 아담한 크기인데, 검은색 바탕에 흰색의 대나무 줄기와 잎이 앞면과 뒷면에 새겨져 있다. 이처럼 절묘한 표현은 이름난 화가라도 그려내지 못할 정도의 한 폭의 아름다운 석죽(石竹)이다. 어떻게 이런 신기한 문양이 만들어졌을까.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분명 내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사실 나는 농촌에서 자랐기에 수석을 볼 기회가 없었다. 20여 년 전 J로부터 작은 진열장과 함께 거기에 들어갈 정도의 수석 31점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수석과 만났지만 별 관심은 없었다. 내가 직접 주운 돌을 받침대에 올리면서 수석에 대해서 새롭게 눈을 떴다. 진열장에 있는 돌을 하나씩 꺼내어 먼지를 털고 닦아주면서 돌의 생김새와 돌에 새겨진 무늬 등을 관찰했다. 크기는 물론 모양과 색깔과 무늬들이 다 달랐다. 이들 돌에는 구름, 국화, 나이테, 물결, 이름 모를 풀 같은 무늬 등이 새겨져 있어, 보면 볼수록 신기했다. 어떻게 그런 모양과 색깔과 무늬들이 만들어졌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걸 보고 자연의 조화 또는 자연의 신비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자연이 빚어낸 명품 중의 명품이 아닌가. 하나같이 정이 가는 돌들이다. 수억 년 동안 물에 씻기고 패이고 닳아 둥글게 또는 여러 모양으로 몸이 바뀌었을 것이다. 그들이 날 보고 뭐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은데…….
수석은 장식용이다. 돌 모양이 어떤 사물을 닮았다든지 또는 어떤 모양의 무늬가 있든지에 따라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같은 모양이나 문양일지라도 질이나 크기 또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서 대우가 달라지기도 한다. 수석은 어쩌면 선택받은 돌이랄까. 그래서 안방에서 주인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지도 모른다.
돌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크기와 모양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 옛날에는 성(城)을 쌓거나 탑을 세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재료가 돌이었다. 주춧돌로 쓰이기도 하고, 댐을 막거나 축대를 쌓거나 징검다리를 놓는데도 쓰인다. 또한, 건축 재료나 조각하는데도 쓰인다. 심지어는 돌을 바수어 모래대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다시 말하면 사용되지 않은 돌이 없다는 말이다. 돌은 크든 작든, 둥근 것이든 모난 것이든, 잘 생겼든 못 생겼든 모두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이 쓸모가 많은 돌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생활의 질이 달라진다면 틀린 말일까?
사람도 마찬가지다.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가난한 이와 부자. 권력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날씬한 사람과 뚱뚱한 사람, 예쁜 사람과 미운 사람 가릴 것 없이 다들 나름의 자기 할 일이 따로 있다. 돌멩이 하나에도 쓰임이 있는데 하물며 우리 인간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황금 보기를 돌 같이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제는 “돌보기를 황금같이 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금도 돌 속에서 찾아내지 않는가. 귀한 것으로 치면 단연 금이겠지만 쓰임새로 치면 돌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돌이 금보다 더 소중하지 않을까. 만약 금이 임금이라면 돌은 백성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백성이 없는 임금이 있을 수 있는가. 그래서 돌을 황금같이 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백성을 황금같이 보라는 말이다.
돌을 바라보고 있다. 돌이 내게 말을 건넨다.
“억지를 부리지 말고 기다려라. 지금의 자기 자리에서 만족하며 온 힘을 기울여라. 자연에 감사하고 순응하라. 당신은 쓸모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21013. 7.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