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으로 살아가기/김현준
2013.10.14 06:53
노년으로 살아가기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나는 이제 노인이 다 되었다.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소용없다. 언제는 내가 나이를 먹자고 해서 먹고, 중년이 되자고 해서 된 것이 아니잖은가. 법적인 노인으로 만 65세가 넘은지 1년이 가까워 오지만, 주민등록상으로는 아직 한 달이 남았다. 아파트노인회에서는 회원 가입을 하라고 독촉이지만, 서류상 65세가 되고 나서 정식으로 입회하려고 한다. 내년에는 아파트 선배 노인들과 봄, 가을 나들이를 함께 할 작정이다.
아내는 나와 동갑이지만, 제대로 출생신고가 되어 극장에서나 기차 승차권 구입 시 할인 혜택을 받는다. 아내에게 남편의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면 “내가 연하남과 살 사람 같이 보이느냐?”고 얼버무린다.
나는 2년 전에 아내와 함께 노인복지관 회원증을 발급받았다. 회원증을 특별히 쓴 적은 없지만, 가끔 복지관에서 점심 식권을 구입할 때 회원증을 보여준다. 한 끼 식대가 1,500원이다. 금년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 복지관에서 식사를 한다. 아내는 한 번도 복지관 식사를 하지 않는다. 아직 노인 대접 받기가 싫은가 보다.
근년에 와서 머리칼이 하나 둘 하얗게 세어지며 얼굴에도 검버섯이 피어난다. 하루나 이틀 걷지 않으면 무릎이 결린다. 퇴행성관절염의 신호인지 모르겠다. 연골이 닳고 물이 고였다면 어찌할까?
올 들어 왼쪽 귀가 먹먹해지고 청력이 떨어진 느낌이다. 아내가 가끔 안 들리느냐고 소리치는 것으로 보아 더 나빠지면 노상 지청구를 들을 게 뻔하다. 이비인후과병원에선 아직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노인에게 밥 먹자고 불러주면 고맙다고 하라고 지인이 귀띔을 해 주었다. 딸이 가끔 커피 집에 가자고 부르면, 모든 일을 제치고 나간다. 그러나 점심을 함께 하자는 지인의 전화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양해를 구한다. 다음엔 연락하지 않을 것인데도 말이다. 모임에 잘 나가지 않으려는 것은 노인이 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다. 자신의 활동 영역이 차츰 좁히고 있는 꼴이다.
“할머니, 왜 우리하고 여행을 가지 않아요?”일곱 살 외손자가 궁금한가 보다.
“응, 네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하지 않네.”
“그래요? 조금 기다려 봐요. 내가 엄마에게 말해 볼 테니까.”
딸네 가족이 여름휴가를 내어 여수 콘도에 가면서 있었던 이야기다. 이제는 그런다고 서운하지 않다. 딸은 다음에 제주도에 함께 가자고 위로의 말을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가니, 할머니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 않다. 그것을 서운타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다음 주에 우리끼리 기차 타고 여수에 다녀오자고 아내를 달랬다.
노인이라는 말은 듣기가 거북하다. 생각나는 이미지가 부정적이다. 나는 노인보다 노년老年이라 쓰려고 한다. 유년, 소년, 청년, 중년, 장년 하다가 갑자기 노인이다. 왜 그랬을까? 반대로 소인하면 소인배가 생각나고, 청인하면 청나라 사람 같다. 중인의 신분은 양반 아래이고 장인은 아내의 부친이니 나이에 따른 표현으로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노년을 노인이라 부를 까닭이 무어란 말인가?
노년에게는 여름휴가가 특별히 필요치 않다. 1년 내내, 아니 여생이 모두 휴가다. 몸만 성하고 주머니에 여유만 있다면 말이다. 아직 습관이 안 되어 여행을 떠나려면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부담이 된다. 앞뒤를 재보다 미루고 말 때가 있다. 그냥 저지르고 훌쩍 떠나버리면 될 것을…….
요즘 여기저기서 65세 이상을 싸잡아 노인으로 부르기는 적절치 않다는 얘기가 있으므로, 내년부터는 노년의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올렸으면 좋겠다. 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노인의 기준을 70세로 높여 ‘70세까지 일하는 사회’로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뒤에는 75세로, 나중에는 80세로 맞추면 어떨까? 장년으로 버티다가 팔순에 접어들어서야 바듯이 노인 대접을 받으면 안 될까?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고려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노년으로 살아갈 날들이 한참이나 남았구나 싶다.
(2013. 10. 14.)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나는 이제 노인이 다 되었다. 인정하지 않으려 해도 소용없다. 언제는 내가 나이를 먹자고 해서 먹고, 중년이 되자고 해서 된 것이 아니잖은가. 법적인 노인으로 만 65세가 넘은지 1년이 가까워 오지만, 주민등록상으로는 아직 한 달이 남았다. 아파트노인회에서는 회원 가입을 하라고 독촉이지만, 서류상 65세가 되고 나서 정식으로 입회하려고 한다. 내년에는 아파트 선배 노인들과 봄, 가을 나들이를 함께 할 작정이다.
아내는 나와 동갑이지만, 제대로 출생신고가 되어 극장에서나 기차 승차권 구입 시 할인 혜택을 받는다. 아내에게 남편의 주민등록증을 요구하면 “내가 연하남과 살 사람 같이 보이느냐?”고 얼버무린다.
나는 2년 전에 아내와 함께 노인복지관 회원증을 발급받았다. 회원증을 특별히 쓴 적은 없지만, 가끔 복지관에서 점심 식권을 구입할 때 회원증을 보여준다. 한 끼 식대가 1,500원이다. 금년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 복지관에서 식사를 한다. 아내는 한 번도 복지관 식사를 하지 않는다. 아직 노인 대접 받기가 싫은가 보다.
근년에 와서 머리칼이 하나 둘 하얗게 세어지며 얼굴에도 검버섯이 피어난다. 하루나 이틀 걷지 않으면 무릎이 결린다. 퇴행성관절염의 신호인지 모르겠다. 연골이 닳고 물이 고였다면 어찌할까?
올 들어 왼쪽 귀가 먹먹해지고 청력이 떨어진 느낌이다. 아내가 가끔 안 들리느냐고 소리치는 것으로 보아 더 나빠지면 노상 지청구를 들을 게 뻔하다. 이비인후과병원에선 아직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노인에게 밥 먹자고 불러주면 고맙다고 하라고 지인이 귀띔을 해 주었다. 딸이 가끔 커피 집에 가자고 부르면, 모든 일을 제치고 나간다. 그러나 점심을 함께 하자는 지인의 전화에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양해를 구한다. 다음엔 연락하지 않을 것인데도 말이다. 모임에 잘 나가지 않으려는 것은 노인이 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다. 자신의 활동 영역이 차츰 좁히고 있는 꼴이다.
“할머니, 왜 우리하고 여행을 가지 않아요?”일곱 살 외손자가 궁금한가 보다.
“응, 네 엄마가 같이 가자고 하지 않네.”
“그래요? 조금 기다려 봐요. 내가 엄마에게 말해 볼 테니까.”
딸네 가족이 여름휴가를 내어 여수 콘도에 가면서 있었던 이야기다. 이제는 그런다고 서운하지 않다. 딸은 다음에 제주도에 함께 가자고 위로의 말을 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가니, 할머니의 도움이 꼭 필요하지 않다. 그것을 서운타고 생각하면 안 된다. 다음 주에 우리끼리 기차 타고 여수에 다녀오자고 아내를 달랬다.
노인이라는 말은 듣기가 거북하다. 생각나는 이미지가 부정적이다. 나는 노인보다 노년老年이라 쓰려고 한다. 유년, 소년, 청년, 중년, 장년 하다가 갑자기 노인이다. 왜 그랬을까? 반대로 소인하면 소인배가 생각나고, 청인하면 청나라 사람 같다. 중인의 신분은 양반 아래이고 장인은 아내의 부친이니 나이에 따른 표현으로는 잘 맞지 않는다. 그런데 유독 노년을 노인이라 부를 까닭이 무어란 말인가?
노년에게는 여름휴가가 특별히 필요치 않다. 1년 내내, 아니 여생이 모두 휴가다. 몸만 성하고 주머니에 여유만 있다면 말이다. 아직 습관이 안 되어 여행을 떠나려면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부담이 된다. 앞뒤를 재보다 미루고 말 때가 있다. 그냥 저지르고 훌쩍 떠나버리면 될 것을…….
요즘 여기저기서 65세 이상을 싸잡아 노인으로 부르기는 적절치 않다는 얘기가 있으므로, 내년부터는 노년의 기준을 70세 이상으로 올렸으면 좋겠다. 얼마 전 모 국회의원이 노인의 기준을 70세로 높여 ‘70세까지 일하는 사회’로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몇 년이 지난 뒤에는 75세로, 나중에는 80세로 맞추면 어떨까? 장년으로 버티다가 팔순에 접어들어서야 바듯이 노인 대접을 받으면 안 될까? 노인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고려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나는 노년으로 살아갈 날들이 한참이나 남았구나 싶다.
(2013. 10.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