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밥/양희선
2013.11.07 06:14
쌀밥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양희선
황금들녘이 풍요롭다. 알알이 여문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풍경이다. 올해는 날씨가 좋았고, 태풍도 비켜가서 모든 농작물이 풍작이라고 한다. 지난해는 태풍 볼라벤으로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었었다. 올해는 논밭농사나 각종과일도 대풍을 이뤄 하느님께 감사하다. 육중한 콤바인이 넓은 논을 줄줄이 밀고 다니면서 탐스런 벼를 순식간에 훑어내고 있다. 노란 벼가 쉴 새 없이 쏟아지니, 흐뭇한 미소가 농부의 주름진 얼굴에 번지고 있다. 노인들만 농촌을 지키고 있는 요즘 농기계마저 없었더라면 힘든 농사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으랴. 다행스럽게도 시대가 급속도로 발전하여 각종농기계들이 빠르게 일처리를 해주니 농사짓는 일이 한결 수월하게 되었다.
그 옛날, 농사를 짓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소는 쟁기질을 하고, 삽과 괭이로 파면서 일일이 손으로 심고 가꿨다. 묶은 나락을 등짐으로 날라다가 홀태로 몇 날 며칠을 훑었다. 잠시도 허리 펼 틈 없이 일을 해도 끝이 없었다. 쓰디쓴 담배 한 모금으로 심신(心身)을 달랬다. 일제치하에서 뼈아프게 가꾼 볏섬을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왜놈에게 다 빼앗겼었다. 분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고도 어느 곳에 하소연 한마디 못하는 힘없는 농민들이었다. 쌀밥대신 콩깻묵 밥이나 먹고 살라는 왜놈들의 악랄한 소행이었다. 양식을 다 빼앗긴 가난한 농사꾼의 가슴은 썰렁한 빈 들판처럼 휑하니 허허로웠다. 가을추수를 끝내고도 쌀밥 한 번 제대로 먹어보지 못하고 잡곡밥이나 고구마로 끼니를 때워야만 했던 배고프고 서러운 시절이었다.
쌀이 모자랄 때, 배고픈 허기를 채워준 일등공신은 통일벼였다. 우리도 한번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열망으로, 수확량이 많은 안남미(월남) 통일벼를 도입하여 쌀 증산에 나섰다. 이모작을 할 수 있는 통일벼는 수확량이 많았다. 배고픔에 허덕였던 우리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푸석하고 찰기 없는 밥이나마 배불리 먹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는 것, 배가 부르니 질 좋고 맛있는 것을 찾게 되었다. 우수농작물 재배연구를 거듭한 우리는 영농기술이 놀랍게 발달하였다. 수많은 질 좋은 품종의 쌀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고, 양식걱정이 없어지니 배부른 밥투정을 부리게 되었다.
쌀밥은 우리 고유의 주식이다. 한 끼니만 굶어도 뱃속이 허전하고 배고픔을 느낀다. 끼니를 때우려고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챙겨 먹어봐도 밥 한 숟갈 먹은 것만 못하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밥만 잘 먹어도 보약을 따로 먹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모든 병의 근원은 밥을 먹지 않아서 허약해진 체질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햅쌀밥을 짓는 구수한 밥 냄새가 풍기면 군침이 돈다. 윤기가 자르르한 밥을 반찬 없이 그냥 집어 먹어도 고슬고슬하고 구수하여 맛이 있었다. 그뿐이랴, 고소한 숭늉은 커피 맛을 뺨치는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구수한 후식이다. 갓 지은 뜨끈뜨끈한 쌀밥에 매콤하게 버무린 생김치를 걸쳐먹는 맛은 먹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갖은 젓갈을 골고루 담아놓은 어촌에서는 흰쌀밥에 짭짤한 젓갈을 곁들여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밥도둑이라고 한다. 산골에서도 잡곡밥을 지어 여러 가지 산나물을 넣어 비빈 산채비빔밥은 입맛을 돋우는 별식으로 친다. 간기 없는 쌀밥에 각종김치와 영양소가 골고루 포함된 감칠맛 나는 반찬은 과학적이면서 먹음직스러운 한정식밥상이다. 우리네 밥상차림은 슬기로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과학적으로나 맛으로도 인정받는 우리 쌀밥문화가, 빵 문화에 밀려서는 안 될 줄 안다. 우리 김치는 세계적인 발효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는가. 우리 젊은이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밥상차림을 꺼리고 있다. 따뜻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면서 내 손으로 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즐거움과 애정을 느낀다. 아침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면 온종일 든든하다. 아이들은 간편하고 먹기 편한 햄버거나 소시지, 빵 같은 서구식 입맛을 들여 비만해지고 몸의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우리 체질에 맞는, 우리음식을 먹어야만 정상체질의 몸매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게 아닌가?
(2013. 11. 3.)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목요반 양희선
황금들녘이 풍요롭다. 알알이 여문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보기만 해도 배부른 풍경이다. 올해는 날씨가 좋았고, 태풍도 비켜가서 모든 농작물이 풍작이라고 한다. 지난해는 태풍 볼라벤으로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었었다. 올해는 논밭농사나 각종과일도 대풍을 이뤄 하느님께 감사하다. 육중한 콤바인이 넓은 논을 줄줄이 밀고 다니면서 탐스런 벼를 순식간에 훑어내고 있다. 노란 벼가 쉴 새 없이 쏟아지니, 흐뭇한 미소가 농부의 주름진 얼굴에 번지고 있다. 노인들만 농촌을 지키고 있는 요즘 농기계마저 없었더라면 힘든 농사일을 누가 감당할 수 있으랴. 다행스럽게도 시대가 급속도로 발전하여 각종농기계들이 빠르게 일처리를 해주니 농사짓는 일이 한결 수월하게 되었다.
그 옛날, 농사를 짓는 일은 힘든 일이었다. 소는 쟁기질을 하고, 삽과 괭이로 파면서 일일이 손으로 심고 가꿨다. 묶은 나락을 등짐으로 날라다가 홀태로 몇 날 며칠을 훑었다. 잠시도 허리 펼 틈 없이 일을 해도 끝이 없었다. 쓰디쓴 담배 한 모금으로 심신(心身)을 달랬다. 일제치하에서 뼈아프게 가꾼 볏섬을 ‘공출’이라는 명목으로 왜놈에게 다 빼앗겼었다. 분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고도 어느 곳에 하소연 한마디 못하는 힘없는 농민들이었다. 쌀밥대신 콩깻묵 밥이나 먹고 살라는 왜놈들의 악랄한 소행이었다. 양식을 다 빼앗긴 가난한 농사꾼의 가슴은 썰렁한 빈 들판처럼 휑하니 허허로웠다. 가을추수를 끝내고도 쌀밥 한 번 제대로 먹어보지 못하고 잡곡밥이나 고구마로 끼니를 때워야만 했던 배고프고 서러운 시절이었다.
쌀이 모자랄 때, 배고픈 허기를 채워준 일등공신은 통일벼였다. 우리도 한번 잘 먹고 잘 살아보자는 열망으로, 수확량이 많은 안남미(월남) 통일벼를 도입하여 쌀 증산에 나섰다. 이모작을 할 수 있는 통일벼는 수확량이 많았다. 배고픔에 허덕였던 우리는, 불면 날아갈 것 같은 푸석하고 찰기 없는 밥이나마 배불리 먹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는 것, 배가 부르니 질 좋고 맛있는 것을 찾게 되었다. 우수농작물 재배연구를 거듭한 우리는 영농기술이 놀랍게 발달하였다. 수많은 질 좋은 품종의 쌀이 쏟아져 나오게 되었고, 양식걱정이 없어지니 배부른 밥투정을 부리게 되었다.
쌀밥은 우리 고유의 주식이다. 한 끼니만 굶어도 뱃속이 허전하고 배고픔을 느낀다. 끼니를 때우려고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챙겨 먹어봐도 밥 한 숟갈 먹은 것만 못하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어른들의 말처럼 밥만 잘 먹어도 보약을 따로 먹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싶다. 모든 병의 근원은 밥을 먹지 않아서 허약해진 체질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햅쌀밥을 짓는 구수한 밥 냄새가 풍기면 군침이 돈다. 윤기가 자르르한 밥을 반찬 없이 그냥 집어 먹어도 고슬고슬하고 구수하여 맛이 있었다. 그뿐이랴, 고소한 숭늉은 커피 맛을 뺨치는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구수한 후식이다. 갓 지은 뜨끈뜨끈한 쌀밥에 매콤하게 버무린 생김치를 걸쳐먹는 맛은 먹어보지 않고서는 모른다. 갖은 젓갈을 골고루 담아놓은 어촌에서는 흰쌀밥에 짭짤한 젓갈을 곁들여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밥도둑이라고 한다. 산골에서도 잡곡밥을 지어 여러 가지 산나물을 넣어 비빈 산채비빔밥은 입맛을 돋우는 별식으로 친다. 간기 없는 쌀밥에 각종김치와 영양소가 골고루 포함된 감칠맛 나는 반찬은 과학적이면서 먹음직스러운 한정식밥상이다. 우리네 밥상차림은 슬기로운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과학적으로나 맛으로도 인정받는 우리 쌀밥문화가, 빵 문화에 밀려서는 안 될 줄 안다. 우리 김치는 세계적인 발효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지 않는가. 우리 젊은이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밥상차림을 꺼리고 있다. 따뜻한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들면서 내 손으로 해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즐거움과 애정을 느낀다. 아침밥을 먹고 하루를 시작하면 온종일 든든하다. 아이들은 간편하고 먹기 편한 햄버거나 소시지, 빵 같은 서구식 입맛을 들여 비만해지고 몸의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우리 체질에 맞는, 우리음식을 먹어야만 정상체질의 몸매와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 게 아닌가?
(2013. 11.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