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윤철
2013.12.16 06:12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윤 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영국의 극작가 죠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 1856~1950)의 묘비명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 원문(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의 번역에 대한 잘 잘못의 논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쇼의 어린 시절은 몹시 불우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겨우 초등학교만 마치고 고향의 토지중개사무소에서 사환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스무 살에 런던으로 이사한 뒤에는 일정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다방면의 예술가들과 사귀며 여러 신문에 원고를 썼으나 수입은 적었다. 가난했다. 처음에는 소설을 썼으나 실패했다. 다섯 편 모두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것이다. 29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비평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비평가로서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상가들과도 사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희곡으로 방향을 바꿨다. 30대 중반부터 극작가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그는 1925년에《피그말리온》이란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80세에 600쪽이 넘는 분량의《Everybody's political what's what?》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세상만사에 대한 그의 견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대부분 깊이가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기 쉬운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다방면의 깊이 있는 지식과 예리한 분석, 그리고 지혜를 담아 사회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쇼에게 묻다 ;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 모든 것》이라고 번역 출간되었다.
G·B 쇼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명언을 많이 남겼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 로마에 가면 로마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라. / 꿈꾸지 않는 자에게 절망은 없다. / 살아있는 실패작이 죽은 걸작보다 낫다.”와 같이 자주 인용되는 명언이 모두 그의 말이다.
그에게는 일화도 많다. 영국의 수많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다 들통 났음. 빨리 도망쳐라.”라는 전보를 보낸 장난기 넘치는 일화가 있다. 나도 한 번 실행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또 자신의 연극을 형편없다고 비난하는 청년과 원고를 쓰레기 같다고 평가하는 자기 부인에게 대응한 일화가 있다. 그의 해학과 교양을 돋보이게 한다. 그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명언을 남겼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하다.
그의 일화 중 백미는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 1878~1927)과의 편지사건이겠다. 이사도라 던컨은 미국출신으로 현대무용의 선구자이며 희대의 춤꾼으로 추앙받는 여자 무용가다. 백치미의 대명사로도 알려져 있다. 던컨이 사교모임에서 만난 쇼를 흠모해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 두 사람이 결혼하면 당신의 명석한 두뇌에 나의 미모를 합한 2세가 태어날 것이니 얼마나 좋겠는가?”
라는 내용이다. 버나드 쇼는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다만 한 가지가 걱정되는구려. 내 얼굴에 당신의 머리가 합해진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되겠소?”
라고 정중한 거절의 답장을 보낸 일화다.
묘비명에서 비롯된 버나드 쇼에 대한 관심은 그의 작품과 저서들을 읽게 만들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의 묘비명의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논란의 핵심은 ‘우물쭈물’이라는 단어에 있다. 원문에는 ‘우물쭈물’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영어실력이 형편없는 내가 보아도 ‘우물쭈물’을 뜻하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나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한다. 그의 저서나 명언들을 통해 엿본 버나드 쇼는 결코 인생을 우물쭈물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그가 인생을 마무리 하면서 썼다는《쇼에게 세상을 묻다》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나는 아주 당당한 그의 모습을 보았다. 어록을 통해서도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말하고 스스럼없이 행동해온 그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회한이 스며나는 묘비명을 남기겠는가. “오래 살다보면 이런 일(죽음)이 올 줄 알고 있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싶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데 묘한 것이 사람 마음이다. 나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내 마음이다. 분명한 오역이라는 마음의 판결을 내렸음에도 미련이 남는다. 오히려 그의 묘비명이 마음에 더 깊숙이 와 닿는다. 그렇게 멋진 오역을 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
그간 살아오면서 우물쭈물하다가 그럭저럭 넘겨버린 일이 참 많다. 갈팡질팡했던 일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아마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은 버나드 쇼보다는 나의 묘비명에 더 어울릴 것 같다.
(2013.12.15.)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요반 윤 철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영국의 극작가 죠지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 : 1856~1950)의 묘비명으로 널리 알려진 말이다. 버나드 쇼의 묘비명 원문(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의 번역에 대한 잘 잘못의 논란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쇼의 어린 시절은 몹시 불우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어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겨우 초등학교만 마치고 고향의 토지중개사무소에서 사환으로 일을 해야만 했다. 스무 살에 런던으로 이사한 뒤에는 일정한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다방면의 예술가들과 사귀며 여러 신문에 원고를 썼으나 수입은 적었다. 가난했다. 처음에는 소설을 썼으나 실패했다. 다섯 편 모두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한 것이다. 29살 때부터 쓰기 시작한 비평이 인기를 얻으면서 그는 비평가로서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상가들과도 사귀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희곡으로 방향을 바꿨다. 30대 중반부터 극작가로서 유명해지기 시작한 그는 1925년에《피그말리온》이란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는 80세에 600쪽이 넘는 분량의《Everybody's political what's what?》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세상만사에 대한 그의 견해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대부분 깊이가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기 쉬운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다방면의 깊이 있는 지식과 예리한 분석, 그리고 지혜를 담아 사회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쇼에게 묻다 ;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 모든 것》이라고 번역 출간되었다.
G·B 쇼는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명언을 많이 남겼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 로마에 가면 로마사람들이 하는 대로 하라. / 꿈꾸지 않는 자에게 절망은 없다. / 살아있는 실패작이 죽은 걸작보다 낫다.”와 같이 자주 인용되는 명언이 모두 그의 말이다.
그에게는 일화도 많다. 영국의 수많은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 “다 들통 났음. 빨리 도망쳐라.”라는 전보를 보낸 장난기 넘치는 일화가 있다. 나도 한 번 실행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또 자신의 연극을 형편없다고 비난하는 청년과 원고를 쓰레기 같다고 평가하는 자기 부인에게 대응한 일화가 있다. 그의 해학과 교양을 돋보이게 한다. 그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명언을 남겼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하다.
그의 일화 중 백미는 이사도라 던컨(Isadora Duncan ; 1878~1927)과의 편지사건이겠다. 이사도라 던컨은 미국출신으로 현대무용의 선구자이며 희대의 춤꾼으로 추앙받는 여자 무용가다. 백치미의 대명사로도 알려져 있다. 던컨이 사교모임에서 만난 쇼를 흠모해서 그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 두 사람이 결혼하면 당신의 명석한 두뇌에 나의 미모를 합한 2세가 태어날 것이니 얼마나 좋겠는가?”
라는 내용이다. 버나드 쇼는
“그것 참 좋은 생각이오. 다만 한 가지가 걱정되는구려. 내 얼굴에 당신의 머리가 합해진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되겠소?”
라고 정중한 거절의 답장을 보낸 일화다.
묘비명에서 비롯된 버나드 쇼에 대한 관심은 그의 작품과 저서들을 읽게 만들었다. 그는 생전에 자신의 묘비명을 유언으로 남겼다고 한다. 그의 묘비명의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논란의 핵심은 ‘우물쭈물’이라는 단어에 있다. 원문에는 ‘우물쭈물’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영어실력이 형편없는 내가 보아도 ‘우물쭈물’을 뜻하는 단어는 없는 것 같다.
나는 다른 관점에서 생각한다. 그의 저서나 명언들을 통해 엿본 버나드 쇼는 결코 인생을 우물쭈물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그가 인생을 마무리 하면서 썼다는《쇼에게 세상을 묻다》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나는 아주 당당한 그의 모습을 보았다. 어록을 통해서도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말하고 스스럼없이 행동해온 그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왜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회한이 스며나는 묘비명을 남기겠는가. “오래 살다보면 이런 일(죽음)이 올 줄 알고 있었다.”
라는 말을 남기고 싶었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데 묘한 것이 사람 마음이다. 나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이 내 마음이다. 분명한 오역이라는 마음의 판결을 내렸음에도 미련이 남는다. 오히려 그의 묘비명이 마음에 더 깊숙이 와 닿는다. 그렇게 멋진 오역을 한 그 사람은 누구일까. 한 번쯤 만나보고 싶다.
그간 살아오면서 우물쭈물하다가 그럭저럭 넘겨버린 일이 참 많다. 갈팡질팡했던 일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아마도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말은 버나드 쇼보다는 나의 묘비명에 더 어울릴 것 같다.
(201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