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정희 시인의 시 세계

그리움 기디림 시학
- 석정희 시인의 시집『문 앞에서』를 보고
    (평론가)   홍 문 표
1.
석정희 시인의 첫 시집『문 앞에서』를 만나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몇 해 전「창조문학」에 등단하여 꾸준히 창작을 해 왔는데 이번에 100여 편의 작품을 선정하여 첫 시집을 내게 된 것이다. 이색적인 것은 우리 시에다 영시를 곁들였고, 몇 편은 음악으로 작곡되어 가사로도 발표된 것이다. 그만큼 석 시인의 시작은 폭넓은 세계를 확보하고 있다.
이번 시집은 제목부터가 깊은 인상을 주고 있다. ‘문 앞에서’라는 이미지는 문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의 성화를 연상하게도 하고,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 7:7)”라는 성경 구절이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마 7:13)”라는 성경구절을 생각하게도 한다. 천국의 문, 죽음의 문, 희망의 문, 미지의 문 등 수많은 문 앞에 서있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다. 결국 인생이란 늘 문 앞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닐까. 인생은 늘 자기 앞에 닫혀진 문을 열어 가는 과정이며 삶의 다양한 열두 대문을 열어 가는 순례자의 길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시를 쓴다는 것도 문을 열어 가는 과정이다. 필자는 졸저「시창작원리」에서 시란 존재탐구의 과정이라고 했다. 시는 그저 언어를 아름답게 장식하거나 독자의 귀를 즐겁게 하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본질을 발견해 가는 노력이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인습과 상식과 세속의 껍질들로 둘러싸여 있다. 따라서 시는 그 세속의 껍질들을 벗겨내는 작업이다. 이는 마치 인습과 관념의 문으로 닫혀진 세계를 열어 가는 진실탐구의 과정이기도 하다. 한 때는 철학만이 진리를 탐구하는 고상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진리란 철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진리는 과학적 진리도 있고, 철학적 진리도 있고, 종교적 진리도 있고, 시적 진리도 있다. 그런가 하면 진리를 찾는 방법도 철학적인 방법도 있고, 시적인 방법도 있는 것이다. 플라톤은 철학만이 진리를 찾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인을 철학의 공화국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철학보다 시가 진리를 찾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하였다. 진리는 철학적인 사유의 방식이 아니라 시적인 은유(metaphore)의 방식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석 시인의 시집『문 앞에서』라는 표제는 다양한 사유들을 요구하는 흥미 있는 제목이다.
석 시인의 이번 시집은 제1부 외로운 길, 제2부 그리움의 강물, 제3부 내 마음의 정원, 제4부 사색의 숲속, 제5부 계절의 향기, 제6부 영혼의 기도, 제7부 내 마음의 노래, 그리고 제8부는 영시로 되어 있다. 소제목들만 보아도 이번 시집이 시도하는 시적 상상력이나 석 시인의 시적 태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가 있다. 그것은 바로 석 시인의 내면세계, 즉 마음의 다양한 정서들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외로움, 그리움, 내 마음, 사색, 영혼 등의 어휘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마음의 실마리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따라서 석 시인이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는 태도는 대상을 객관화하는 모더니즘 기법보다 자아의 내면을 철저히 드러내는 서정(抒情)시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석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보여주는 시적 항해는 바로 외로움의 자각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제1부의 외로운 길이라는 제목도 그렇거니와 그의 시집 서두에서 보여주고 필자소개나 작가의 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시인은 필자소개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글을 통해서 내 생활 속에서 느끼는 갈등과 아픔과 그리고 내 영혼의 외로움 같은 것을 글로 쓰기 시작했습니다.”라고 했다. 자신의 외로움을 글로 표현하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가 글을 쓰는 것은 제가 살아가는 이 외로운 길에서 바른 삶의 길을 찾아가기 위한 영혼의 불빛 같은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길을 철저히 외로운 길로 인식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 글쓰기와 함께 이 외로운 길을 함께 갈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그는 자신의 삶을 외로운 것으로 인식했고, 이러한 외로움을 시와 함께 동행하고자 하는 것이 그가 시를 쓰는 이유다. 물론 이러한 외로움은 그에게 한한 것만은 아니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인생은 역시 외로운 길입니다. 단 한 사람의 동반자도 없는 외로운 사막의 길을 홀로 가는 길입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자신만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인생은 모두가 외로운 존재라는 인간관이기도 하다.
인간이란 무엇인, 파스칼은 생각하는 갈대라 했다. 생각은 무한한 가능성을 약속하지만 갈대라는 한계를 가진 존재라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외로움의 자각은 불타나 예수에게서 더욱 극명해진다. 불타는 인생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다. 모든 것은 덧없다는 말이다. 예수는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의 값은 사망이라 했다. 무한한 가능성과 욕망으로 가득한 존재이지만 마침내 그로 인해서 죽고 마는 허무한 존재임을 지적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근원적으로 허무한 존재다. 그러기에 외롭고 고독한 존재다. 이러한 존재인식에서 삶의 의미를 재정립하려는 것이 실존주의 철학이기도 하다. 석 시인의 문학적 출발도 철저히 이러한 실존의 자각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석 시인의 시에는 바로 생의 근원적인 고독, 즉 처절한 외로움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임 을 알게 된다.
이러한 외로움의 자각에서 마침내 도달한 곳이 그의 시집 첫 장에서 제시하고 있는「문 앞에서」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제목은 이미 시집의 표제가 될 만큼 비중을 갖고 있거니와 이번 시집의 중심 테마가 된다.

나 여기 있습니다

거리의 먼지 뒤집어쓰고
돌아 온
나 여기 있습니다
기다리시는 그림자
창에 비쳐
잰 걸음으로 왔습니다
떠돌던 먼 나라의 설움에
눈물 섞어 안고
나 여기 와 있습니다
어둠 속 머언 발치서
아직 끄시지 않은
불빛을 따라

나 여기 와 있습니다
-「문 앞에서」전문

「문 앞에서」의 작품은 마치 돌아온 탕자의 고백처럼 처절하다. 나란 존재는 우선 거리의 먼지를 뒤집어쓰고 돌아온 존재다. 그만큼 세속에 오염된 존재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떠돌던 먼 나라의 설움에/ 눈물 섞어 안고” 있는 존재다. 이는 외로움의 인생길에서 설움과 눈물을 자각한 인간의 참회다. 자신의 존재란, 또는 인생의 삶이란 외로운 나그네, 설움과 눈물로 점철된 나그네 길이다. 그러기에 그 길은 외로운 길이고 절망의 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간 모두가 인식해야 하는 실존적 자각의 세계이다. 이러한 실존적 자각은 인생을 절망하게 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외로움의 자각, 고독의 자각이야말로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하였다. 따라서 인간은 이 고독한 나그네의 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이다. 그런데 해탈과 구원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불교에서는 스스로 깨닫는 고행의 과정을 통해서 가능한 것으로 믿는다. 바로 수도자의 길이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수도자의 길을 거부한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의 문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역, 즉 신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구원의 길이란 신 앞에 서는 것이다. 신의 은총만이 인간의 구원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석 시인의 시적 구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철저히 인간의 외로움을 고백한다. 인간이란 근원적으로 외로운 존재, 즉 구원이 불가능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바로 절대자의 문 앞에 서는 것이다.

꿈을 씹으며

온 몸으로 흔들고 있는
너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이냐
널 안으려는
나무의 절규를 닮은
우리
사막에 서는 하나의 모래기둥인 것을
-「바람아 바람아」전문

아무도 모른다
내가 하나의 까만 점인 것을
목숨을 대신하여 나를 지키고 있는
총알 같은 이 설움을
아무도 모른다

점은 또 다른 점을 만났다가
더러는 헤어지기도 하지만 나에겐
또 하나의 점이 박혀있어
달빛 어리는 창가에 노래로 흘러도
아무도 듣는 이가 없다
-「점의 노래」에서

「바람아 바람아」는 바로 바람같이 허무한 존재인식이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지 모르는 존재인식 그것은 사막의 모래기둥처럼 허무한 존재인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허무와 고독의 자각은「점의 노래」에서도 계속된다. 나란 까만 점이라고 했다. 그만큼 미미한 존재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존재다. 따라서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존재다. 결국 나란 존재는 누구도 보아주거나 들어주지 않는 철저히 차단된 고독한 존재다. 그러기에 결국은 당신의 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3.
문 앞에 선 자의 할 일이란 문 저편에 대한 그리움이다. 문 이편에는 눈물이 있고, 외로움이 있기에 문 앞에 서서 문 저편의 세계를 한없이 그리워하는 것이다. 문 저편의 세계란 어디일까. 그것은 공간적으로는 현실이 아닌 곳이고, 시간적으로는 현재가 아닌 시간이다. 현실이 아닌 공간이란 이상적인 세계, 꿈의 세계, 그리움의 세계일 것이고, 현재가 아닌 시간이란 과거의 시간이거나 미래의 시간이 된다. 여기서 과거의 시간이란 유년의 시간이거나 유년의 공간이 된다.

한 달에 한 번 어머니 따라 나선 장날
우시장 옆 골목 포장친 장국밥집
발가락 나온 신발 신고 멈춰서던 신발가게
아직도 눈에 선하게 보이는 고향
사방으로 흩어진 그 이웃 형제들
이제 이곳에 모여 그 고향을 다시 그리네

가난의 설움을 안고
새 꿈 찾아 떠나온 고향
큰 바다 건너 와 내린 뿌리
이제 막 꽃봉오리를 지어가는데
옆구리에서 나던 양은도시락 김치냄새가
나를 이렇게 옛 고향을 그립게 하고
아직도 나는 밤마다 꿈속에서
만원버스의 속의 그 그리운 얼굴들을
그리워하게 하네
-「나는 아직도 꿈속에서 만원 버스를 탄다」

오늘도 그리다 만 그림 그린다
당신이 떨어져 있는 만큼의 공간을
화폭 삼아 그림을 채워 가도
여백만 더욱 커가고
당신과 헤어져 있는 시간과 공간이
화폭에 쌓여
그림이 사라져
오늘도 어제의 그림을 이어
자꾸만 또 다시 그림을 그린다
그럴수록 커져만 가는 공간에
어김없이 시간에 밀리는
안타까운 마음만 새겨지는
이런게 그리움이라는 것일까
형상도 드러나지 않는 그림
한사코 한사코 그리고만 있다
-「못다 그린 그림」전문

창백한 얼굴 하나 다가 와
마음의 호수에 물길을 낸다
그 길 따라 가면
어디에 가 닿을까
가슴 적시는
파랗게 멍든 얼굴로 떠오르고
돌아서 보면 어느 사이엔가
비쳐 오는 그리움
잠겼다 떴다 줄었다 차는
사이 사이에 서서
깊은 밤바람에 얼굴을 씻고
조용히 앞에 다가선 얼굴로
다시 만난다
-「달」전문

그리움의 정서는 현재와 과거의 괴리에서 빚어지는 심리적 갈등이다. 과거와 너무나 달라진 현재, 너무나 이질적인 공간, 더구나 현재가 익숙하지 못할 경우 익숙했던 과거의 연민이 강하게 드러난다. 특히 고향이나 과거와 멀리 떨어진 이국 적인 생활에서는 더욱 절실해지는 것이 고향에 대한 향수다.「나는 아직도 꿈속에서 만원 버스를 탄다」는 바로 석 시인의 과거에 대한 상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어머니, 장국밥집, 신발가게, 이웃형제, 양은도시락, 김치냄새, 만원버스 그것이 비록 현재보다 초라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과거, 그것도 순수했던 유년의 시간과 공간을 지켜줬던 삶이기에 버릴 수 없는 추억이고, 상상의 운명적인 뿌리가 된다.「못다 그린 그림」은 결국 현재에서 자기정체성을 찾고자 하나 그것이 과거와 연결되지 않으면 미완성임을 실감한다. 현재라는 새로운 시간과 공간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러나 이미 과거라는 뿌리가 있기에 현재만으로는 자기정체성의 그림이 완성될 수 없다. 바로 두 개의 고향을 가져야 하는 모든 이들의 정체성의 혼란이기도 하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달」이다. 달은 현재와 과거, 타향과 고향을 동시에 비춰주고, 그리운 마음을 연결해 주는 통로가 된다. 시인은 바로 달을 통하여 과거와 현재, 고향과 타향의 대화를 시도한다. “마음의 호수에 물길을 낸다/ 그 길 따라가면/ 어디에 가 닿을 까” 바로 달을 통하여 마음의 호수에 물길을 내는 상상력을 통하여 그리움을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4.
그러나 석 시인의 시는 지나온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과거의 시간, 고향에 대한 향수 이러한 것들로만 얽매이지 않는다. 그는 과감히 과거의 그리움에서 미래에 대한 기다림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현재의 시간 현재의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시간과 과거의 공간도 벗어나야 한다. 그렇다면 그가 마지막으로 도달해야 할 공간을 어디일까, 바로 천상의 공간이다. 하늘이 있고, 별이 있는 소망의 공간이다.

때로는 새이고 싶습니다
이른 아침 나무 가지에서
그대 깨우는 노래 부르고
때로는 구름이고 싶습니다
파란 하늘에 떠서
창속의 그대를 드려다 보며
때로는 바람이고 싶습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게 스며들어
방안 가득히 훈풍으로 채우고
때로는 별이고 싶습니다
어두운 밤에 초롱초롱한 빛으로
잠들어 있는 얼굴 지키고 싶습니다
-「새, 구름, 바람 그리고 별」전문

이제 양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세요
이내 날아가
그대를 맴돌다가
머언 발치에서라도
그대를 볼 수 있게
그대여
목마름에 타는 그대여
날아오를 수 있게
전신을 훌훌 털었어요
가벼운 내 어깨에
날개를 달아 주세요
천둥과 벼락이 날 가려도
꼭 날아오를 께요
그대 곁으로
-「날개를 달아 주세요」전문


건너에 두게 하는 강

난  
그 강을 건너고 싶다
-「강」전문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과거의 시간을 회상해보고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나 과거의 시간이란 돌이킬 수 없는 허무가 있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은 아름답지만 서글픈 감상에 젖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재를 벗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인습에 매인 현재를 쉽게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현재를 벗어나는 비상한 방법을 모색한다. 그것이 시적 상상력이다. 새가 되고, 구름이 되고, 바람이 되고, 별이 되는 기적적인 변신이 바로 그것이다.「새, 구름, 바람 그리고 별」은 그러한 상상의 노래다. 이들은 모두 지상의 한계와 구속을 벗어날 수 있는 시어들이 다. 모두가 현재보다 높은 공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그대와의 자유로운 만남이 보장되는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욕망은「날개를 달아 주세요」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날개를 달고 그대를 향해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다. 천둥과 벼락이 저지할지라도 그대 향해 갈 것이라는 대단한 결의를 보이고 있다.「강」에서도 현재의 공간을 벗어나고자 한다. 왜냐하면 강의 이쪽, 즉 차안(此岸)에는 네가 없기 때문이다. 너는 지금 강 건너 피안(彼岸)에 있다. 그러니 네가 있는 강 건너, 즉 요단강 건너를 욕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요단강 건너에는 네가 있고, 당신이 있고, 천국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래에 대한 소망,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에 대한 소망은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는 신앙의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그대를 향한 그리움과 기다림이 마침내 주님이 있는 곳으로 전환된다는 말이다. 세속적인 모든 번민과 갈등을 미래의 시간, 저 건너 모든 것이 가능한 기다림의 공간으로 귀일되는 것이다.

괴로울 때면 하늘을 보아라
거기 너의 평안이 있다
외로울 때도 하늘을 바라라
그때 너의 위로가 온다
슬플 때는 하늘에 부르짖으라
팔 벌려 안아주는 이 만나리라
기쁠 대 잊지 말아라
널 지키시는 이 함께 계심을
-「너 이럴 때면」전문

하늘에 별 모두 사라져
눈에 잡히는 것 하나 없어도
가슴에 별 있어 세상을 사네
해 저무는 길에
길잡이 되는 별로 떠
이끄는 길 따라 세상을 가네
조그만 진주알 하나
목에 걸어주지 못한
아무도 모르는 마음 감싸는
그 마음 있어 세상을 이기네
거기 꽃씨 뿌려
싹 트고 꽃 피는 계절
싱그런 열매 기다리는 마음으로
세상 의지 다 버리네
-「세상 것 다 없어도」전문

강 건너던 세월
따라 흘러 가버린 날들
세상 벗어날 수 없어
바다에 모였는가
과녁 비켜가는 화살도 있지만
마음 한 가운데 꽂힌
은혜의 촉에
선혈이 뚜욱 뚝 떨어진다
그 방울방울에 피어나는
저 꽃을 보아라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도
돌밭에도 와 피어내고
이제는 그 꽃잎들
꽃강이 되어 흐르고 흘러
모두 모여 꽃바다 되고
새들 나란히 날개 접듯 평안한 것을
-「은혜의 강」전문

「너 이럴 때면」은 바로 지상의 모든 번민에서 벗어나 하늘의 소망을 바라는 소박한 신앙의 간증이다. 하늘엔 평안이 있고, 위로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안아주는 당신이 있고, 늘 지켜주는 동행자가 있다는 것이다.「세상 것 다 없어도」하늘엔 내 가슴의 별이 있고, 내 마음 감싸주는 마음이 있기에 세상 것 다 없어도 그곳의 싱그런 열매를 기다리며 세상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강 건너던 세월, 비록 세상의 시간은 흘러갔지만「은혜의 화살」은 꽃강이 되고, 꽃바다 되어 마침내 평안한 안식을 얻게 된다.
이처럼 석정희 시인의 첫 시집『문 앞에서』는 외로운 인간의 실존을 자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헤매다가 마침내 미래의 시간, 미래의 공간으로 비상하는 구원의 시학이다. 유년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서 영원한 당신의 세계인 미래의 그 날을 기다리며 당신을 향한 소망으로 은총의 문을 열어 가는 그리움에서 기다림으로 승화되는 절절한 시학이다.
- 평론가 홍문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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