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서 길을 묻다
- 석정희 제 2시집『나 그리고 너』에 부쳐 -



홍 문 표
(시인, 평론가, 오산대학 총장)


석정희 시인이 두 번째 시집『나 그리고 너』를 상재하였다. 제목부터가 서정적일 뿐만 아니라 나와 너, 주체와 객체의 진한 관계성을 암시하고 있다. 사실 인간이란 관계성의 존재다. 아니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들은 서로 간에 관계성을 유지하며 생존한다. 이를 유기성이니, 순환이니, 인연이니 하는데 그 관계성이란 따지고 보면 너와 나 주체와 객체 사이의 공간적 거리, 심리적 거리에 따라 의미와 가치를 결정하는 인식작업이기도 하다.
사실 부부란 형식적으로는 무촌이다. 평생 살을 맞대고 살아가기에 그보다 가까운 거리가 있을 수 없다. 물리적으로는 분명 그렇다. 그러나 살을 맞댄 부부간이라도 심리적 거리, 심리적 관계는 아득히 먼 남남일 수 있다. 그런가하면 멀고먼 허공에서 밤이면 희미하게 명멸하는 어느 외로운 별, 물리적으로는 수억 광년의 먼 거리이지만 시인의 가슴에 박힌 반짝이는 별이 되어 심리적 거리를 한없이 좁힐 수도 있다.
시와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은 모든 사물들 간의 거리를 물리적인 척도로 측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물리적 척도란 인간들이 공동으로 채택한 거리를 근거로 하여 평가하는 행위다. 따라서 과학을 객관적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적인 가치기준이 아니라 결국 인위적인 잣대를 기준해서 헤아리는 행위다. 그렇다면 시란 무엇인가. 시는 시인의 주관적인 잣대, 심리적인 잣대로 사물간의 거리를 재고 평가한다. 따라서 시는 주관적인 잣대놀음이다. 그렇다면 과학의 객관적인 잣대놀음이 더 진실한가. 시인의 주관적이고 상상적인 잣대놀음이 진실한가. 그야 객관을 하늘처럼 생각하는 중생들에겐 과학만이 진실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을 신처럼 생각하는 중생들에게 이렇게 질문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팔등신 미스유니버스가 더 아름다운가. 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한 이제는 주름진 아내가 더 아름다운가. 팔등신이 객관적으로는 아름다울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그녀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추상적이고 가상적인 아름다움일 뿐이다. 그보다는 객관적 기준으로는 부족하지만 아내야말로 나와 평생을 동고동락한 삶의 전부다. 아내는 나의 생명이고, 애증이고, 행복의 동반자다. 그래도 아내보다 팔등신이 더 미인이라고 한다면 그는 정상이 아니다. 아내의 진정을 배신하는 것이다. 여기에 객관과 주관, 과학과 시의 진실성에 대한 허구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시와 과학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정도의 분별로 끝나지 않는다. 과학의 역할을 너와 나, 주체와 객체, 지상의 모든 사물들이 어떻게 서로가 구별되는가를 철저히 밝히는 일이다. 따라서 과학에서는 너와 나, 모든 사물들이 서로가 구별되고, 분리되고, 분열되어야 한다. 원래 에덴은 모든 사물들이 통합된 공간이었다.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들이 모두가 하나님의 피조물이 되어 함께 어우러지는 순환과 질서와 평화의 동산이었다. 따라서 그들 사이에는 객관적 거리감이 없는 하나의 세계다. 그러나 인간들이 하나님처럼 지혜로운 존재가 되겠다는 망상에서부터 죄를 짓고 에덴의 동녘으로 쫓겨난 이후 인간들은 오직 이성과 과학에만 진리가 있다는 우상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판단력은 현란한 기술문명을 만들었지만 너와 나를 구별하고 차별하는 문명의 뒤안길에는 열등과 우월 속에 갈등과 경쟁과 살육의 비극도 함께 감수해야 하는 저주를 받게 된 것이다.
너와 나의 구별, 너와 나의 거리감 그것이 인간중심주의, 과학주의가 꿈꾸는 유토피아였지만 그것은 간을 빼주고 용궁에 들어간 토끼처럼 영혼을 저당 잡힌 저주의 땅일 뿐이다. 이러한 저주의 땅을 키에르케고르는 소외와 절망이라 했다. 나와 너, 주체와 객체가 하나였던 에덴동산에서는 소외도 없고, 절망도 없고, 죽음도 없었다. 문제는 인간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에덴을 벗어나면서부터 너와 나를 구별하는 과학의 길을 걸으면서 처절한 고독을 경험하게 되고 죽음이란 절망의 쓴잔을 마시게 된 것이다.
따라서 과학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지 못한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은 더욱 외로워지고 치열해지고 마침내 죽어버리는 절망의 저주를 받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그날의 복락원을 생각하게 되고 영혼의 구원을 갈망하게 된다. 그런데 과학이 우리를 에덴으로 회복시키지 못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다시 낙원의 세계, 에덴의 세계를 쟁취할 수 있을까. 그것은 에덴의 속성인 거리 좁힘의 길이다. 과학이 너와 나, 주체와 객체의 거리를 넓히는 실낙원의 길이라면 시는 바로 너와 나, 주체와 객체의 거리를 좁히는 복락원의 길이다. 따라서 시는 단순한 언어유희나 일상의 수사가 아니라 절망에서 희망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거듭나는 몸짓이며 그것은 너와 나, 주체와 객체의 거리를 좁히는 노력이다.
석정희 시인의 이번 시집『나 그리고 너』는 바로 이러한 시적 에스프리에 근거하여 철저히 거리 좁힘을 통한 시적 구원의 노래다. 그런데 여기서 거리 좁힘이란 나와 너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너에게로 가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가는 데는 반드시 소통의 통로 즉, 길[道]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시집의 작업은 너에게로 가는 시적 탐색(the quest)이며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너를 만나는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과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 깨어 일어나
널 떠 올리는 새벽

나는 어디론가 가고
너만 살아서 가슴을 판다

나 어둠 속에서도
너를 만나면 힘이 되고

나 쉬지 않고 퍼 올리는 물
너 위한 생수가 되어

나 눈을 감고 있어도
너 거기 그렇게 살아 있어

나 한 때도 머물지 않고
널 향해 가고만 있다

네가 나무라면
나는 숲 속에 갇혀 있고

너 서있는 그늘에
나 쉬고 있다
-「나 그리고 너」전문

비오는 밤 깨어 일어나
낙숫물 소리에 가슴 적시네
구름이던 한 방울 한 방울
흩어져 내려 또 물로 만나
강으로 바다로 모여 가는데
길 떠나 강 건넌 이 소식 없고
불어난 강물 거리를 넓혀
더 멀리 떼어 놓아 애만 타네
-「비오는 밤 깨어 일어나」에서

시간이 초록색을 안고 와 쉬는
여름이 되어 더운 건지
머언 거리를 달려가는 마음이
애가 타서 그러는 건지
먼 거리만큼 공간도 크다
그 공간을 채우고 채우고도 남을
이 그리움 가 닿을까
멀리 뵈는 하늘가로
눈길을 열어 마음을 띄운다
-「먼 거리만큼 공간도 크다」에서

너의 밤은
별이 빛날지 모르지만
나의 밤은
먹구름 덮인 칠흑이다
가까이 듣고 싶은 숨소리
거친 바람소리만
나를 스쳐 지나고
마음은 떠서 바람타고
행여 만날까 애태우며
길을 떠나고……
-「서로 다른 밤에」에서

석 시인에게 있어서 너는 어떤 존재인가. 시집의 표제가 되고 있는「나 그리고 너」는 바로 네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나는 어디론가 가고/ 너만 살아서 가슴을 판다”고 했다. 나는 어디로 가버린 부재한 존재이고, 오직 너만 살아서 나의 가슴을 팔만큼 절대적인 존재다. 너는 어둠 속에서도 힘이 되는 존재다. 너는 내 숲의 나무가 되고 안식이 된다. 그러니 나는 쉬지 않고 너에게로 가야만하는 존재다.
그런데 현재 나와 너의 관계는 어떠한가. 나는 지금 비오는 밤에 홀로 깨서 떠나간 너를 애태우며 기다리는 존재다.「비오는 밤 깨어 일어나」는 바로 “길 떠나 강 건넌 이 소식 없고/ 불어난 강물 거리를 넓혀/ 더 멀리 떼어 놓아 애만 타네”다. 그는 이미 강을 건넜고, 더구나 불어난 강물은 너와 나의 거리를 더욱 넓히고 있을 뿐이다. 나의 안타까움은 바로 더욱 너와 나의 거리 넓힘에 있다. 이러한 발상은「먼 거리만큼 공간도 크다」에서 더욱 논리화된다. 너와 나의 거리가 멀수록 공간도 커지고 그만큼 그리움의 연민도 커진다. 결국 너와 나의 거리는 바로 그리움의 거리가 되고, 신뢰와 사랑의 거리가 된다. 이렇게 나와 멀어진 너와의 관계, 네가 부재한 나의 현재는「서로 다른 밤에」이다. “너의 밤은/ 별이 빛날지 모르지만/ 나의 밤은/ 먹구름 덮인 칠흑이다” 그러니 이 먹구름 덮인 칠흑의 밤을 벗어나기 위하여 나는 너에게로 가야한다. 너에게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하고, 그 길을 가야한다.
일찍이 만해는「님의 침묵」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그리운 것은 모두 님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석 시인이 그렇게 그리워하는 너는 누구인가? 연인인가. 절대자인가. 시적으로 상징화된 너를 여기서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그가 그리워하는 모든 대상이 너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3부에서 보여주고 있는 일련의 시들은 너가 님으로 승화되고 마침내 님에게 가는 길을 묻고 있어 제 1부에서 그리워하던 너가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님에게 가는 길 어둡고 험하여도
얼싸안고 맞아 줄 님만을 생각하며
오늘도 길을 가네

소나기 거친 바람 휩쓸고 간 뒤에는
함박눈 내려쌓여 상처를 싸매주는
그 손길 그리며 가네

칠흑 같은 밤이면 별빛으로 길을 내고
사나운 짐승들엔 바위로 막아내는
그 님에게로만 가네

사랑의 못 자국 흐르는 붉은 피로
이맘을 씻으면 하얀 마음의 그림자
님에게 가 닿으리

내 님 나만의 님 기다리고 계시는
그곳에 다다라 온 맘으로 품으리
가슴 깊이 안기리
-「님에게 가는 길」전문

먼 곳에 있어도
만날 수 없어도
님의 숨결을
가슴속 깊이 새깁니다

따사로운 햇살 비추듯
님의 따뜻함으로
가슴에 안고
보듬어 주십시요
-「소원을 위한 기도」에서

당신에게로 가는 길이
호흡과 신음으로 이어저도
당신을 향해서만 가겠습니다

산과 바다 가로 막아
갈 길 끊기면
당신 이름 부르겠습니다

끝없는 길이 되고
목이 타는 사막이어도
낯선 그늘에선 쉬지 않겠습니다
-「호흡과 신음으로 이어져도」에서

그님을 향해 가면
눈 감아도 길이 열리네
망설이던 마음 그대로
다가서는 발걸음
그 님에 가 닿아 있고
쓸쓸함도 외로움도
쫓겨 가는 시간까지
밟고 가는 길에
마중하는 손길 따스해
-「눈 감아도 열리는 길」에서

이처럼 석 시인은 너에게 가는 길을 님에게 가는 길로 구체화시켰다. “님에게 가는 길 어둡고 험하여도/ 얼싸안고 맞아 줄 님만을 생각하며/ 오늘도 길을 가네”라는 각오로 님에게 간다. 왜 님에게 가는가. 님은 나를 얼싸안고 맞아줄 것이기 때문이다. 상처를 싸매주고, 별빛으로 길을 내고, 사나운 짐승은 바위로 막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님은 누구인가. 바로 “사랑의 못 자국 흐르는 붉은 피로 이 맘을” 씻어줄 당신이다. 그러니 그는 내님이고, 나만의 님이다. 바로 신앙의 대상인 주님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 작품들이 보여주는 길찾기는 바로 그리스도에게 가는 신앙적 순례의 길이다. 그러기에 제 1부의 너와 여기 제 3부의 님과는 차이가 있다. 나와 너의 관계는 인간적인 연민이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서로의 거리가 멀수록 그리움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제 3부의 님은 비록 “먼 곳에 있어도/ 만날 수 없어도/ 님의 숨결을/ 가슴속 깊이 새깁니다” 즉 나와 님과의 관계는 거리를 초월한다.「소원을 위한 기도」에서 님은 비록 먼 곳에 있어도 가슴깊이 있음을 의식할 만큼 님과의 관계는 거리가 무의미하다. 그만큼 나에게서 님은 절대적이다. 그러기에「호흡과 신음으로 이어져도」산과 바다와 사막이 있어도 님에게 가겠다는 것이다. 그님을 향해 가면 눈감아도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이렇게 석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시에서 다양한 길을 묻고 있다. 제 1부에서는 너에게 가는 길을 묻고, 제 3부에서는 님에게 가는 길을 묻고 있다. 그렇다면 제 4부에서는 누구에게 가는 길을 묻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꽃으로 가는 길이다. 한 송이 꽃으로 가는 길이다.

하늘 아래 산과 들
어느 곳에서나 피어나는 들꽃처럼
나도 꽃을 피울 수 있다면
맑은 새벽이슬 머금고
아침 햇살과 타는 노을 가슴에 풀어  
핏빛보다 더 붉은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싶다.
-「가시나무꽃」에서

온 정성 다하여
내 가슴에서 피어내고야만
내 한 송이 마음 꽃
우리만을 위해
영원히 변치 않는 빛으로
하늘 끝까지 가리라
하늘에서도 피는 꽃으로……
-「가슴 속에서 피는 꽃」에서

아픔 서리고
설움 담겨
내 가슴에 꽂힌
장미 한 송이
꽃 바다 이뤄
시월의 언덕 넘실댄다
이 한 송이
장미의 꽃씨 눈트고
싹 돋아 피어나기까지
모진 비바람 속
주머니에 달랑거리던
동전 부딪치는 소리에
거친 발자국
보고 들으며
눈물로 꽃병 채워
한 송이 꽃 간직한다
-「한 송이 꽃(3)」전문

석 시인의 제 4부에서 길 찾기는 꽃이 되는 것이다. 꽃이 되는 것이 그의 간절한 소망이다.「가시나무꽃」에서 그는 산과 들 어느 곳에서나 피는 들꽃이 되고 싶어 한다. “맑은 새벽이슬 머금고/ 아침 햇살과 타는 노을 가슴에 풀어/ 핏빛보다 더 붉은 한 송이 꽃을 피우고 싶다”고 한다. 꽃은 여인이고, 예술이고, 아름다운 꿈이다. 그런데 석 시인의 꽃은「가슴 속에서 피는 꽃」을 더욱 갈망한다. 외형적인 꽃이 아니라 내면적인 꽃, 영혼의 꽃, 그것은 우리만의 꽃이고, 하늘나라까지 가는 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모든 풍상을 이겨낸 한 송이 장미꽃이 된다. 성숙한 여인, 완성된 작품, 오직 아름답고 향기로운 삶의 꽃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처럼 석정희 시인이 보여주는 이번 시집은 한마디로 시에서 길을 묻는 아름다운 서정이다. 그 길을 한 시인으로, 한 여인으로, 한 인간으로 진지하게 가는 삶의 길이다. 그것은 바로 너에게 가는 길이고, 절대적인 님에게 가는 길이고 아름다운 한 송이 꽃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영롱한 새벽이슬처럼 맑고 고운 시적 상상력이 따뜻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아름다운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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