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반을 위하여/김규원
2014.05.17 08:47
17년 반을 위하여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규 원
봄인가 했더니, 아가씨들의 날씬한 다리와 반팔셔츠 차림이 자주 눈에 띈다. 성큼 초여름으로 들어섰다. 덧없는 세월의 흐름이라니……. 바로, 엊그제 보일러를 돌려 추위를 견디었는데, 벌써 홑옷 차림의 좋은 계절이 되었다. 이렇게 몇 달을 지나면 다시 추운 겨울이 올 것이고, 그러면 또 한 해가 갈 것이다.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앱 가운데 내 수명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얼마 전 그 앱을 다운받아 수명을 예측하는 지문에 답을 넣어보았다. 무려 88세까지 산다는 예측이 나왔다. 앞으로 17년 몇 개월을 더 살게 된다는 결과를 보고, 일순 반갑고 ‘그럼 그렇지.’ 하고 안도(安堵)했다. 그러나 이어서, ‘왜 95세 쯤 산다고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딸아이한테서 심심찮게 듣던
“아빠는 100살까지 살아서 우리와 같이 늙을 거야. 우리보다 더 팔팔한 청춘 같아.”
라는 말에 정말 100살을 살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늙으면 애가 된다더니, 다른 이들보다 조금 체력이 좋은 편이라는 하찮은 사실에 되잖은 기대를 한 것이다. 난청으로 보청기를 쓰면서도 잘 듣지 못하고, 만날 뭔가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애를 먹으며 사는, 그런 주제에 내 꿈이 너무 야무지지 않는가?
60대를 넘어서며 마라톤을 시작했다. 달리는 내내 지난 일을 생각하고, 내 잘못들을 반성하기도 했지만, 항상 남는 생각은 더 치열하게 나 자신을 이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무릎관절에 무리가 왔다. 그 뒤, 자전거를 타면서도 나와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가면서 ‘여기서 쉬면 나는 지는 거다.’라고 자기최면(自己催眠)을 걸면서 달렸다. 그렇게, 나를 이기는, 극기(克己)를 통해 잘못 산 내 삶의 죄업(罪業)들을 잊으려 했다. 가슴 가득 미움을 안은 채 바라보는 사물이 제대로 보일 턱이 없지만, 나는 항상, 나는 바로 보는데 남들이 비뚜로 본다고 생각하며, 아집(我執)과 독선(獨善)에 빠져 살았다.
금년 내 나이 만70을 넘어서던 날, 내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2월 2일은 내 생일이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내 지난 삶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날이 생일인데 혼자서 쓸쓸히 잠이 깨어, 뭔가 생일날 아침식사를 챙겨 먹어야 한다는 처량한 마음이 단초(端初)가 되었을 것이다.
“70년을 살면서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내가 어쩌다가 이처럼 쓸쓸한 생일 아침을 맞아야 하는가?”
오랜 시간을 그렇게 앉아 이런 저런 일을 생각하고 되짚어보다가 문득, 내 자신이 한없이 어리석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이들과 손자들이 와서 떠들고 같이 밥을 먹어도 곧 제 집으로 갈 것이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될 게 아닌가? 내가 어떻게 살았다 해도 아내가 병상에 누워있는데, 내가 얼마나 즐거울 수 있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서 호사를 하며 살았더라도 결국은 빈손으로 가는 것이고,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을까?
다행히도 다른 친구들보다 건강한 몸으로 아픈데 없이 지내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그머니 쓸쓸한 기분이 사그라졌다. 이어서, 이제 남은 삶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세상과 화해하고, 미움도 버리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너그럽고 편하게, 모든 불편한 생각과 인과(因果)들을 흘러간 시간 속에 던져버리고 살자고 다짐했다. 욕심도 내려놓고, 모두에게 내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빌기로 작정하니 맘이 편해졌다. 먼저 내가 만나기 싫었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무조건 내가 미안하다고 화해를 청했다. 차마 말하기 어려웠던 일들도 서슴없이 털어놓고, 모두 흘려보내자고……. 그리고 손을 마주잡고 웃었다. 그렇게 편한 것을 일찍 털어버리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요즘 선거일을 도와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꽤 오랜 기간 살았던 곳이라 아는 사람이 상당수 있어서 적게는 3년, 많게는 십 수 년 만에 만나는 사람도 있다. 대개는 나이든 내게 듣기 좋은 말로 신수가 좋아 보인다는 치레인사를 하지만, 몇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차갑고 말 붙이기 어렵던 인상에서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의미이리라. 내 나름의 마음공부가 조금은 성과를 내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이렇게, 마치 득도(得道)라도 한 양 중언부언(重言復言)했지만, 솔직히 지금도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날카롭게 반응하는 속내를 다독이며 감추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잇값을 못하는 노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니 쉽지 않다. 정말 다행히도 수필을 만나서 내 마음이 글로 적혀 나오니 점점 더 순화(醇化)되는 것이리라 믿는다.
만일, 스마트폰 앱이 예고한 대로 88세까지 산다면 앞으로 17년 반을 더 살아야 한다. 그 많은 날들을 산다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지금 배움에 불붙은 수필을 다듬어 남들처럼 수필집도 내고, 내년 봄엔 등단(登壇)이라는 문턱도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기구한 내 삶과 상상의 날개를 섞어, 이야기책도 만들어보고 싶다. 자전거로 전국일주도 해보고 싶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사진에 담아 사진수필집도 만들고 싶다. 17년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는다면 모두 가능한 일이다. 정말로 17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가파른 고개를 자전거로 넘어가던 그 다짐으로,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넘어서고 싶다. 더불어, 늦게야 알아버린 애틋한 글 사랑의 열정을 불꽃처럼 태워 승화(昇華)시키고 싶다.
(2014.05.17.)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규 원
봄인가 했더니, 아가씨들의 날씬한 다리와 반팔셔츠 차림이 자주 눈에 띈다. 성큼 초여름으로 들어섰다. 덧없는 세월의 흐름이라니……. 바로, 엊그제 보일러를 돌려 추위를 견디었는데, 벌써 홑옷 차림의 좋은 계절이 되었다. 이렇게 몇 달을 지나면 다시 추운 겨울이 올 것이고, 그러면 또 한 해가 갈 것이다.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는 앱 가운데 내 수명을 예측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얼마 전 그 앱을 다운받아 수명을 예측하는 지문에 답을 넣어보았다. 무려 88세까지 산다는 예측이 나왔다. 앞으로 17년 몇 개월을 더 살게 된다는 결과를 보고, 일순 반갑고 ‘그럼 그렇지.’ 하고 안도(安堵)했다. 그러나 이어서, ‘왜 95세 쯤 산다고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딸아이한테서 심심찮게 듣던
“아빠는 100살까지 살아서 우리와 같이 늙을 거야. 우리보다 더 팔팔한 청춘 같아.”
라는 말에 정말 100살을 살 거라고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늙으면 애가 된다더니, 다른 이들보다 조금 체력이 좋은 편이라는 하찮은 사실에 되잖은 기대를 한 것이다. 난청으로 보청기를 쓰면서도 잘 듣지 못하고, 만날 뭔가를 제대로 챙기지 못해 애를 먹으며 사는, 그런 주제에 내 꿈이 너무 야무지지 않는가?
60대를 넘어서며 마라톤을 시작했다. 달리는 내내 지난 일을 생각하고, 내 잘못들을 반성하기도 했지만, 항상 남는 생각은 더 치열하게 나 자신을 이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무릎관절에 무리가 왔다. 그 뒤, 자전거를 타면서도 나와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비 오듯 땀을 흘리며 가파른 고갯길을 올라가면서 ‘여기서 쉬면 나는 지는 거다.’라고 자기최면(自己催眠)을 걸면서 달렸다. 그렇게, 나를 이기는, 극기(克己)를 통해 잘못 산 내 삶의 죄업(罪業)들을 잊으려 했다. 가슴 가득 미움을 안은 채 바라보는 사물이 제대로 보일 턱이 없지만, 나는 항상, 나는 바로 보는데 남들이 비뚜로 본다고 생각하며, 아집(我執)과 독선(獨善)에 빠져 살았다.
금년 내 나이 만70을 넘어서던 날, 내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지난 2월 2일은 내 생일이었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갑자기 내 지난 삶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날이 생일인데 혼자서 쓸쓸히 잠이 깨어, 뭔가 생일날 아침식사를 챙겨 먹어야 한다는 처량한 마음이 단초(端初)가 되었을 것이다.
“70년을 살면서 내가 한 일이 무엇인가?”
“내가 어쩌다가 이처럼 쓸쓸한 생일 아침을 맞아야 하는가?”
오랜 시간을 그렇게 앉아 이런 저런 일을 생각하고 되짚어보다가 문득, 내 자신이 한없이 어리석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아이들과 손자들이 와서 떠들고 같이 밥을 먹어도 곧 제 집으로 갈 것이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될 게 아닌가? 내가 어떻게 살았다 해도 아내가 병상에 누워있는데, 내가 얼마나 즐거울 수 있을 것인가?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서 호사를 하며 살았더라도 결국은 빈손으로 가는 것이고, 지금의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지 않을까?
다행히도 다른 친구들보다 건강한 몸으로 아픈데 없이 지내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슬그머니 쓸쓸한 기분이 사그라졌다. 이어서, 이제 남은 삶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세상과 화해하고, 미움도 버리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너그럽고 편하게, 모든 불편한 생각과 인과(因果)들을 흘러간 시간 속에 던져버리고 살자고 다짐했다. 욕심도 내려놓고, 모두에게 내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빌기로 작정하니 맘이 편해졌다. 먼저 내가 만나기 싫었던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무조건 내가 미안하다고 화해를 청했다. 차마 말하기 어려웠던 일들도 서슴없이 털어놓고, 모두 흘려보내자고……. 그리고 손을 마주잡고 웃었다. 그렇게 편한 것을 일찍 털어버리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요즘 선거일을 도와주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꽤 오랜 기간 살았던 곳이라 아는 사람이 상당수 있어서 적게는 3년, 많게는 십 수 년 만에 만나는 사람도 있다. 대개는 나이든 내게 듣기 좋은 말로 신수가 좋아 보인다는 치레인사를 하지만, 몇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표정이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차갑고 말 붙이기 어렵던 인상에서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의미이리라. 내 나름의 마음공부가 조금은 성과를 내는 것 같아 다행스럽다.
이렇게, 마치 득도(得道)라도 한 양 중언부언(重言復言)했지만, 솔직히 지금도 눈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날카롭게 반응하는 속내를 다독이며 감추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잇값을 못하는 노인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니 쉽지 않다. 정말 다행히도 수필을 만나서 내 마음이 글로 적혀 나오니 점점 더 순화(醇化)되는 것이리라 믿는다.
만일, 스마트폰 앱이 예고한 대로 88세까지 산다면 앞으로 17년 반을 더 살아야 한다. 그 많은 날들을 산다면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은 지금 배움에 불붙은 수필을 다듬어 남들처럼 수필집도 내고, 내년 봄엔 등단(登壇)이라는 문턱도 넘어보고 싶다. 그리고 기구한 내 삶과 상상의 날개를 섞어, 이야기책도 만들어보고 싶다. 자전거로 전국일주도 해보고 싶고, 아름다운 장면들을 사진에 담아 사진수필집도 만들고 싶다. 17년이라는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는다면 모두 가능한 일이다. 정말로 17년 반이라는 시간이 남아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나는 가파른 고개를 자전거로 넘어가던 그 다짐으로,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넘어서고 싶다. 더불어, 늦게야 알아버린 애틋한 글 사랑의 열정을 불꽃처럼 태워 승화(昇華)시키고 싶다.
(2014.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