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제3강의실
2014.09.26 12:28
속續 제3강의실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새 학기가 되어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의 제3강의실에 새로운 기운이 넘쳐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젊은 축에 드는 반원들이 술자리를 꺼리는 통에 신규 회원이 줄어든 탓이다.
다행히 팔순인 H문우님이 입회하여 노익장을 과시하는 게 보기 좋고, 창립 멤버였던 S, L회원이 가세하여 분위기가 살아나는 느낌이다.
월요일 오후 5시에 시작하는 제3강의실의 분위기는 내가 처음 참석했던 2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차분해졌다. 회원 몇 사람은 건강 탓인지, 일 탓인지 소문 없이 자리를 떴다.
ㄱ복지관으로 적을 옮긴 K문우는 입담이 좋았고, Y문우는 후덕하고 점잖았다. 그때만 해도‘술 잘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는 통설이 먹혀들어 대부분 소주 네댓 잔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치웠다. 주량은 소주나 막걸리 각 1병을 초과할 정도였다.
인후동 우체국 뒷골목에‘만복집’이 있다. 탁자가 반들반들 윤이 나고 실내 인테리어가 그럴듯한 그런 세련된 식당은 아니다. 상호대로 분위기가 수더분하고 주인아주머니가 흔연스럽게 맞아주는 노년들의 단골 식당이다. 두루 만 가지 복을 누리기 바라는 인정이 깔려있다. 서가엔 수필집이 빼곡하게 꽂혀 있고 벽에는 수필화 한 점이 걸려있다. 책을 꺼내보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아도 간혹 책 이름을 훑어보고 가는 이들이 있다.
주인아주머니의 호칭은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술이 거나해진 L문우는‘박가야’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만복’하며 상호를 대며,‘박 사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주인아주머니는 회원들에게 인기가 있다. 술 몇 잔 걸칠 줄 아는 회원들과는 나이를 떠나서 잘 어울린다. 때에 따라서는 걸쭉한 육담에도 흉허물이 없다.
원래 제3강의실은 만복집 건너편에 있는 J식당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J식당은 홀이 넓어 수필반 전체 회식 때 이용하는데, 김치찌개가 인기 메뉴다. 재료를 푸짐하게 넣고 국물을 잘 우려낸 뒤 고추장을 두어 숟갈 풀고 센 불을 붙이면 제 맛이 난다.
만복집에서 즐겨 먹는 메뉴는 뼈다귀 탕이다. 돼지 뼈에 살점이 두툼하게 붙어있고 시래기를 그득하게 넣어 영양식으로도 그만이다. 소주파가 한 상, 막걸리파도 한 상, 그러고는 비주류가 한 상을 차지한다. 주당 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비주류 문우들을 파계시키려 애를 쓴다. 특히 L문우는 막무가내다. 술잔에 소주를 채워주곤 언제 마시는지 지켜본다. 재촉도 하면서 술상 아래 빈 그릇에 술을 따르면 불같이 화를 낸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비싼‘돈 국’을 그러느냐고 상대에게 핀잔을 주곤 했다. 이제 내가 그 질책을 되받고 있다. 권에 못 이겨 한두 잔 들고 귀가하면, 아내의 성화에 시달린다.
K교수가 자녀의 권유로 술을 1년쯤 들지 않고 있다. N문우는 작년부터 건강상 이유로 술을 끊었다. 비주류 동지가 늘면서 나는 술잔에 입술만 적시고 만다. 밥 한 공기와 뼈다귀 탕을 먹고 나면 외식으로도 괜찮은 편이다. 안주만 먹고도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예전에는 생각지 못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막걸리 한 대접을 쩝쩝 소리 나게 마시는 문우가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음속으로는 추억의 술맛을 음미하기도 한다.
가끔 여성 문우들을 초대하여 합석하기도 한다. 이때는 젊은 층이 어울려 신나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조금은 떠들썩해도 노래를 부르거나 실수하는 일이 없어 술자리는 항상 깔끔하다.
‘제3강의실’은 둔산 K문우가 명명했고 한 편의 수필로 빚은 바도 있다.“제3강의실은 나에겐 산 교육장이다. (중략) 우리들의 제3강의실은 뒤풀이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장소가 수시로 바뀐다. 오늘도 나는 수필에 취하고 술에 취하면서 수필 쓰기 요령을 한 수 배웠다.”
제3강의실은 2008년 안골노인복지관에 수필창작반이 설강되면서 자연스레 이어온 모임으로, 처음엔 이곳저곳 식당을 옮겨가며 만났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만복집을 아지트로 정하여 7년의 연륜을 쌓고 있다.
김학 교수는 수필평론집 ≪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에서 “고정 참석자는 전, 현 애주가 12, 3명쯤 된다. 이 모임 때문에 그들은 월요일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제3강의실 식사비용은 그 날 유사有事 가 맡으며, 그는 건배사(乾杯辭)를 할 자격이 있다. ‘안골수필반 문우님들의 건강과 건필을 위하여’, ‘수필아, 고맙다!’로 힘차게 합창을 하며 회식을 시작하는데, 잘 훈련된 조직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수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화제는 세상 이야기와 세월호 걱정, 젊은이들의 방종과 달라진 세태에 모아진다.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소주잔을 권한다.
만복집 본래 여주인은 키가 작고 표정이 밝지 못했으나 식당을 인수한 박 사장은 서글서글한 인상에 말이 잘 통하여 회원들이 좋아한다. 남녀유별을 따질 나이는 지나 피차 허물없이 지내는 처지다.
한 시간 반 남짓 흘러 자리를 파하면 각자 귀가를 서두르지만, Y문우를 비롯한 당구 동호인들은 단골 당구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누구 점수가 짜니, 싱겁니.’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데 여기가 왜 제3강의실이지?” 하고 묻는 동료가 있어 나름의 짐작을 해보았다. 김학 교수님이 강의를 하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을 제1강의실, 복지관을 제2강의실로 치고, 만복집은 그 다음 강의실이라고 한 게 아닐까.
어찌됐건 제3강의실이 안골수필반 문우들의 친교와 학습의 장場으로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며, 머지않아 너도나도 넣어달라는 신입 회원이 줄을 설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2014. 9. 27.)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 현 준
새 학기가 되어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의 제3강의실에 새로운 기운이 넘쳐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젊은 축에 드는 반원들이 술자리를 꺼리는 통에 신규 회원이 줄어든 탓이다.
다행히 팔순인 H문우님이 입회하여 노익장을 과시하는 게 보기 좋고, 창립 멤버였던 S, L회원이 가세하여 분위기가 살아나는 느낌이다.
월요일 오후 5시에 시작하는 제3강의실의 분위기는 내가 처음 참석했던 2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되게 차분해졌다. 회원 몇 사람은 건강 탓인지, 일 탓인지 소문 없이 자리를 떴다.
ㄱ복지관으로 적을 옮긴 K문우는 입담이 좋았고, Y문우는 후덕하고 점잖았다. 그때만 해도‘술 잘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는 통설이 먹혀들어 대부분 소주 네댓 잔은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치웠다. 주량은 소주나 막걸리 각 1병을 초과할 정도였다.
인후동 우체국 뒷골목에‘만복집’이 있다. 탁자가 반들반들 윤이 나고 실내 인테리어가 그럴듯한 그런 세련된 식당은 아니다. 상호대로 분위기가 수더분하고 주인아주머니가 흔연스럽게 맞아주는 노년들의 단골 식당이다. 두루 만 가지 복을 누리기 바라는 인정이 깔려있다. 서가엔 수필집이 빼곡하게 꽂혀 있고 벽에는 수필화 한 점이 걸려있다. 책을 꺼내보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아도 간혹 책 이름을 훑어보고 가는 이들이 있다.
주인아주머니의 호칭은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술이 거나해진 L문우는‘박가야’라 부르고, 어떤 사람은‘만복’하며 상호를 대며,‘박 사장’이라 부르기도 한다.
주인아주머니는 회원들에게 인기가 있다. 술 몇 잔 걸칠 줄 아는 회원들과는 나이를 떠나서 잘 어울린다. 때에 따라서는 걸쭉한 육담에도 흉허물이 없다.
원래 제3강의실은 만복집 건너편에 있는 J식당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J식당은 홀이 넓어 수필반 전체 회식 때 이용하는데, 김치찌개가 인기 메뉴다. 재료를 푸짐하게 넣고 국물을 잘 우려낸 뒤 고추장을 두어 숟갈 풀고 센 불을 붙이면 제 맛이 난다.
만복집에서 즐겨 먹는 메뉴는 뼈다귀 탕이다. 돼지 뼈에 살점이 두툼하게 붙어있고 시래기를 그득하게 넣어 영양식으로도 그만이다. 소주파가 한 상, 막걸리파도 한 상, 그러고는 비주류가 한 상을 차지한다. 주당 팀에서는 어떻게 해서든지 비주류 문우들을 파계시키려 애를 쓴다. 특히 L문우는 막무가내다. 술잔에 소주를 채워주곤 언제 마시는지 지켜본다. 재촉도 하면서 술상 아래 빈 그릇에 술을 따르면 불같이 화를 낸다. 나도 예전에는 그랬다. 비싼‘돈 국’을 그러느냐고 상대에게 핀잔을 주곤 했다. 이제 내가 그 질책을 되받고 있다. 권에 못 이겨 한두 잔 들고 귀가하면, 아내의 성화에 시달린다.
K교수가 자녀의 권유로 술을 1년쯤 들지 않고 있다. N문우는 작년부터 건강상 이유로 술을 끊었다. 비주류 동지가 늘면서 나는 술잔에 입술만 적시고 만다. 밥 한 공기와 뼈다귀 탕을 먹고 나면 외식으로도 괜찮은 편이다. 안주만 먹고도 할 이야기가 있다는 게 다행이다. 예전에는 생각지 못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막걸리 한 대접을 쩝쩝 소리 나게 마시는 문우가 부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마음속으로는 추억의 술맛을 음미하기도 한다.
가끔 여성 문우들을 초대하여 합석하기도 한다. 이때는 젊은 층이 어울려 신나게 대화를 주고받는다. 조금은 떠들썩해도 노래를 부르거나 실수하는 일이 없어 술자리는 항상 깔끔하다.
‘제3강의실’은 둔산 K문우가 명명했고 한 편의 수필로 빚은 바도 있다.“제3강의실은 나에겐 산 교육장이다. (중략) 우리들의 제3강의실은 뒤풀이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장소가 수시로 바뀐다. 오늘도 나는 수필에 취하고 술에 취하면서 수필 쓰기 요령을 한 수 배웠다.”
제3강의실은 2008년 안골노인복지관에 수필창작반이 설강되면서 자연스레 이어온 모임으로, 처음엔 이곳저곳 식당을 옮겨가며 만났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만복집을 아지트로 정하여 7년의 연륜을 쌓고 있다.
김학 교수는 수필평론집 ≪수필의 길, 수필가의 길≫에서 “고정 참석자는 전, 현 애주가 12, 3명쯤 된다. 이 모임 때문에 그들은 월요일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고 언급했다.
제3강의실 식사비용은 그 날 유사有事 가 맡으며, 그는 건배사(乾杯辭)를 할 자격이 있다. ‘안골수필반 문우님들의 건강과 건필을 위하여’, ‘수필아, 고맙다!’로 힘차게 합창을 하며 회식을 시작하는데, 잘 훈련된 조직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수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하지만, 화제는 세상 이야기와 세월호 걱정, 젊은이들의 방종과 달라진 세태에 모아진다. 서로의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소주잔을 권한다.
만복집 본래 여주인은 키가 작고 표정이 밝지 못했으나 식당을 인수한 박 사장은 서글서글한 인상에 말이 잘 통하여 회원들이 좋아한다. 남녀유별을 따질 나이는 지나 피차 허물없이 지내는 처지다.
한 시간 반 남짓 흘러 자리를 파하면 각자 귀가를 서두르지만, Y문우를 비롯한 당구 동호인들은 단골 당구장으로 발길을 옮긴다. ‘누구 점수가 짜니, 싱겁니.’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런데 여기가 왜 제3강의실이지?” 하고 묻는 동료가 있어 나름의 짐작을 해보았다. 김학 교수님이 강의를 하는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을 제1강의실, 복지관을 제2강의실로 치고, 만복집은 그 다음 강의실이라고 한 게 아닐까.
어찌됐건 제3강의실이 안골수필반 문우들의 친교와 학습의 장場으로 오래오래 이어지기를 바라며, 머지않아 너도나도 넣어달라는 신입 회원이 줄을 설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2014.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