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넋
이 월란
기다리지 않았어도 봄은 왔습니다
참혹했던 겨울은 천연(天然)의 정도(正道)앞에 이여이 무릎 꿇고
체경(體鏡)처럼 청모한 햇살앞에, 나신으로 드러난
빙판의 상흔들이 이제 되려 생소합니다.
인화되지 못한 사진을 내려놓고
암실의 휘장을 젖혀봅니다
영원히 동면할 듯 잦아든 나의 심장도
봄의 심장안에서 다시 뛰고 싶어함을
이제 더 이상 탓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을,
털어내고 일어서야 할 때가 있음을 무언의 눈빛으로
피워내고 있는 저 봄의 설연(設宴)으로 이제 가렵니다
사랑의 주검을 가련히 묻어두고
봄의 넋이 뛰어놀고 있는 혼유석(魂遊石) 위에
새 넋의 꽃 한송이 올려놓아 봅니다
2007-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