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11
어제:
219
전체:
5,030,226

이달의 작가
제1시집
2008.05.09 13:08

만성 (慢性)

조회 수 256 추천 수 3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만성(慢性)


                                                                                이 월란




뿌리는 늘 가늠되고 있다
줄기?곧음이나 꽃받침의 싱싱함으로도 혹은 열매의 굵기로도
방금 세안을 마친 계집아이의 낯짝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열매가
허공을 주렁주렁 점령하고 있을 때
우린 땅 아래 감추인 토양의 점조직도 올곧은 뿌리의 뻗침으로
충실히 점거당하고 있으리라 쉽게 단정해 버리지 않던가
밑동이 삭아 없어진지 오래라고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것인가
순진무구한 동식물의 줄기들은 언감생심 흉내조차 내지 못할 일이거늘
호모사피엔스의 줄기에선 종종, 혹은 자주, 혹은 만성으로도 일어나는 것을
기적도 잦으면 일상이 되어버리는 법
아랫도리가 마비되어 버린 몸관에서도 꽃은 피고 열매가 맺힌다
밑동이 잘려나가고 아연한 세상 속 통제된 구역에서도
정충과 밑씨는 개헤엄을 쳐서라도 물마루를 올라
무수한 길을 내고 또 내어 뇌관 촘촘히 박힌 열매를 맺고
정받이 빠치는 씨방안에서 영장(靈長)의 길을 또박또박 걷고 있다면
대체 보이지 않는 속씨식물의 헛물관는 어떻게 연명을 하고 있었을까
어디에 기생을 하며 누구의 통로 안에서 더부살이를 해 온 것인가
인생은 뿌리 없이도 응고되지 않는 물관 줄기로 열매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짧디 짧은 것일 뿐이라고
뿌리가 가늠되지 않을만큼, 들통나지 않을만큼 길지 않은 것 뿐이라고
행보석 위에서 꼼지락대던 발끝이 간지러웠던 건
행여 명주실같은 뿔거지라도 돋으려고 한 연유에서일까

                                                    
                                                                              2007-06-26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11 무제사건 이월란 2009.12.20 349
910 배란기 이월란 2008.05.10 349
909 제1시집 무정물(無情物) 이월란 2008.05.09 349
908 주망(蛛網) 이월란 2008.05.09 349
907 길고양이 이월란 2014.05.28 348
906 안락사 이월란 2010.01.19 348
905 제2시집 문신 이월란 2008.05.10 348
904 열쇠 이월란 2013.05.24 347
903 잃어버린 詩 이월란 2010.04.23 347
902 영시집 Longing 이월란 2010.03.22 347
901 이름도 없이 내게 온 것들을 이월란 2008.05.10 347
900 제1시집 바람의 길 2 이월란 2008.05.09 347
899 진흙덩이 이월란 2008.05.08 347
898 견공 시리즈 아기 종결자(견공시리즈 111) 이월란 2011.10.24 346
897 마른꽃 2 이월란 2011.07.26 346
896 견공 시리즈 안녕, 엘리1 (견공시리즈 90) 이월란 2011.03.18 346
895 갈피 이월란 2010.11.24 346
894 사실과 희망사항 이월란 2010.01.13 346
893 제3시집 표절시비 이월란 2009.11.25 346
892 오일장 이월란 2009.07.29 346
Board Pagination Prev 1 ...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