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13
어제:
1,016
전체:
5,020,038

이달의 작가
제1시집
2008.05.09 13:08

만성 (慢性)

조회 수 256 추천 수 32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만성(慢性)


                                                                                이 월란




뿌리는 늘 가늠되고 있다
줄기?곧음이나 꽃받침의 싱싱함으로도 혹은 열매의 굵기로도
방금 세안을 마친 계집아이의 낯짝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열매가
허공을 주렁주렁 점령하고 있을 때
우린 땅 아래 감추인 토양의 점조직도 올곧은 뿌리의 뻗침으로
충실히 점거당하고 있으리라 쉽게 단정해 버리지 않던가
밑동이 삭아 없어진지 오래라고 누가 감히 짐작이나 할 것인가
순진무구한 동식물의 줄기들은 언감생심 흉내조차 내지 못할 일이거늘
호모사피엔스의 줄기에선 종종, 혹은 자주, 혹은 만성으로도 일어나는 것을
기적도 잦으면 일상이 되어버리는 법
아랫도리가 마비되어 버린 몸관에서도 꽃은 피고 열매가 맺힌다
밑동이 잘려나가고 아연한 세상 속 통제된 구역에서도
정충과 밑씨는 개헤엄을 쳐서라도 물마루를 올라
무수한 길을 내고 또 내어 뇌관 촘촘히 박힌 열매를 맺고
정받이 빠치는 씨방안에서 영장(靈長)의 길을 또박또박 걷고 있다면
대체 보이지 않는 속씨식물의 헛물관는 어떻게 연명을 하고 있었을까
어디에 기생을 하며 누구의 통로 안에서 더부살이를 해 온 것인가
인생은 뿌리 없이도 응고되지 않는 물관 줄기로 열매를 지탱할 수 있을 만큼
짧디 짧은 것일 뿐이라고
뿌리가 가늠되지 않을만큼, 들통나지 않을만큼 길지 않은 것 뿐이라고
행보석 위에서 꼼지락대던 발끝이 간지러웠던 건
행여 명주실같은 뿔거지라도 돋으려고 한 연유에서일까

                                                    
                                                                              2007-06-26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471 영시집 Rapture 이월란 2010.04.05 469
1470 RE: 새벽 이월란 2021.08.16 120
1469 영시 Reading You 1 이월란 2016.08.16 136
1468 영문 수필 Reflection of Service Learning 이월란 2012.04.10 237
1467 영문 수필 Reflection of Without Pity 이월란 2012.04.10 214
1466 견공 시리즈 Rent-A-Dog (견공시리즈 123) 이월란 2012.05.19 352
1465 영문 수필 Revenge 이월란 2010.02.28 507
1464 영시 Roses of Sharon Have Blossomed! 이월란 2016.08.16 80
1463 영시 Sales Call 1 이월란 2016.08.16 65
1462 영문 수필 Security or Freedom 이월란 2010.09.20 396
1461 영문 수필 Self-Assessment 이월란 2011.03.18 343
1460 영문 수필 Semiotic Comparison between Saussure and Bakhtin 이월란 2014.05.28 434
1459 영문 수필 Shitty First Drafts 이월란 2011.01.30 14744
1458 영문 수필 Sign Language 이월란 2010.07.09 363
1457 영문 수필 Silence 이월란 2013.05.24 258
1456 영문 수필 Simulation of Disability 이월란 2012.02.05 267
1455 영문 수필 So Mexicans are Taking Jobs from Americans 이월란 2013.05.24 159
1454 Soap Opera* 증후군 이월란 2008.06.25 231
1453 영시 Someone is Cancelling Me 1 이월란 2016.08.16 84
1452 견공 시리즈 SOS(견공시리즈 18) 이월란 2009.08.25 369
Board Pagination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