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65
어제:
307
전체:
5,024,426

이달의 작가
2008.05.09 13:40

어느 시인

조회 수 327 추천 수 2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어느 시인


                                                                                                                                                          이 월란





서정주 시인의 발문으로 시작되는 그녀의 시아버님의 시집을 읽으며 동병상련의 아픔에 상처가 아렸다. 가슴에 주머니가 달린 하얀 와이셔츠를 매일 밤 입고 주무셨단다. 메모지와 연필을 넣으신 채, 꿈길에서조차 밟히는 시상(詩想)의 꽃 한송이 꺾으시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못된 계집아이들이 스크럼을 짜 행진을 했던 어릴 적 그 야박한 놀이처럼 남의 땅에 발 들여 놓은 죄값, 가슴으로 치르시며 창가에 앉아 하얀 백지로 햇살을 싸곤 하셨다는 그 노옹 시인. 10불이 아까워 이발소에 가지도 못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깎으시다 가위 끝으로 귀를 자르기도 하셨다는  


* 두 눈에 눈물이 없다면 영혼에 무지개도 뜨지 않는다는데 낯선 노창의 가슴에 평생 가로질러 떠 있었을 눈물자국같은 그 무지개가 내 가슴을 채홍빛으로 물들이는 날, 가고 없는 인생, 타인의 가슴에 남겨지는 이 환영같은 아픈 무지개, 그래서 시인은 시를 쓸까. 활자로라도 뱉어내지 않으면 터질 것 같은 육신이 애처러워, 말라 비틀어질 것 같은 육신이 턱턱 막혀와 마른 땅 눈물로 적시며 무지개 넋을 찾아 오늘도 시를 쓸까.


끓어오르는 이국의 영토 위에서 옷고름같은 무지개로 닦았을 시인의 젖은 가슴, 떠나간 시인의 비장한 노호(怒號)가 들리는 밤. 이역만리 낯선 곳의 지명 속에 뿌리 찾아 배회하는 유랑의 넋이 오랜 지기(知己)처럼 다가오는, 노염 실은 정나미 서러운 밤


돈도 밥도 되지 않는 시를 신작로에 이정표로 세워 두는 사람을 보았나. 시는 읽고 덮어지는, 시집(詩集)이라는 장목비이(長目飛耳)안에 눈가리고 누워 있는 주검 위에 피는 부질없는 꽃이 아니던가. 이름 없는 순교자의 길로 신앙처럼 붙들려 태워진 시인의 가슴이 이리도 아파오는 날, 난 시집을 밤늦도록 덮지 못한다.                                        
                                                                          
                                                                                                                                                          2007-7-16




* 친구의 시아버님이시며 미주 이민 1세이신 故 김선현 시인(1932~2000)의 시집 3권을 읽은 날

* 두 눈에 눈물이 없다면 영혼에 무지개도 뜨지 않는다. --- 인디언들의 속담
  The soul would have no rainbow if the eyes had no tears
                                                             ---Native American Proverb---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91 그 땐 이월란 2010.01.19 336
890 제3시집 이 남자 이월란 2010.01.13 400
889 통싯간 이월란 2010.01.13 440
888 사실과 희망사항 이월란 2010.01.13 346
887 제3시집 詩人과 是認 그리고 矢人 이월란 2010.01.11 380
886 새 3 이월란 2010.01.11 339
885 아멘족 3 이월란 2010.01.11 329
884 견공 시리즈 토비, 천연 스모키 화장의 진수를 보여주다(견공시리즈 52) 이월란 2010.01.11 496
883 머리로 생리하는 여자 이월란 2010.01.07 545
882 깡패시인 이월란 2010.01.07 460
881 발칸의 장미 이월란 2010.01.07 518
880 아멘족 2 이월란 2010.01.07 388
879 아멘족 1 이월란 2010.01.07 473
878 가방 속으로 이월란 2010.01.04 489
877 행글라이더 이월란 2010.01.04 386
876 초콜릿의 관절 이월란 2010.01.04 365
875 흰긴수염고래 이월란 2010.01.04 545
874 실비아, 살아있는 이월란 2010.01.04 344
873 밀수제비 이월란 2009.12.31 389
872 치과에서 이월란 2009.12.31 466
Board Pagination Prev 1 ... 34 35 36 37 38 39 40 41 42 43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