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
이 월란
서정주 시인의 발문으로 시작되는 그녀의 시아버님의 시집을 읽으며 동병상련의 아픔에 상처가 아렸다. 가슴에 주머니가 달린 하얀 와이셔츠를 매일 밤 입고 주무셨단다. 메모지와 연필을 넣으신 채, 꿈길에서조차 밟히는 시상(詩想)의 꽃 한송이 꺾으시려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못된 계집아이들이 스크럼을 짜 행진을 했던 어릴 적 그 야박한 놀이처럼 남의 땅에 발 들여 놓은 죄값, 가슴으로 치르시며 창가에 앉아 하얀 백지로 햇살을 싸곤 하셨다는 그 노옹 시인. 10불이 아까워 이발소에 가지도 못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깎으시다 가위 끝으로 귀를 자르기도 하셨다는
* 두 눈에 눈물이 없다면 영혼에 무지개도 뜨지 않는다는데 낯선 노창의 가슴에 평생 가로질러 떠 있었을 눈물자국같은 그 무지개가 내 가슴을 채홍빛으로 물들이는 날, 가고 없는 인생, 타인의 가슴에 남겨지는 이 환영같은 아픈 무지개, 그래서 시인은 시를 쓸까. 활자로라도 뱉어내지 않으면 터질 것 같은 육신이 애처러워, 말라 비틀어질 것 같은 육신이 턱턱 막혀와 마른 땅 눈물로 적시며 무지개 넋을 찾아 오늘도 시를 쓸까.
끓어오르는 이국의 영토 위에서 옷고름같은 무지개로 닦았을 시인의 젖은 가슴, 떠나간 시인의 비장한 노호(怒號)가 들리는 밤. 이역만리 낯선 곳의 지명 속에 뿌리 찾아 배회하는 유랑의 넋이 오랜 지기(知己)처럼 다가오는, 노염 실은 정나미 서러운 밤
돈도 밥도 되지 않는 시를 신작로에 이정표로 세워 두는 사람을 보았나. 시는 읽고 덮어지는, 시집(詩集)이라는 장목비이(長目飛耳)안에 눈가리고 누워 있는 주검 위에 피는 부질없는 꽃이 아니던가. 이름 없는 순교자의 길로 신앙처럼 붙들려 태워진 시인의 가슴이 이리도 아파오는 날, 난 시집을 밤늦도록 덮지 못한다.
2007-7-16
* 친구의 시아버님이시며 미주 이민 1세이신 故 김선현 시인(1932~2000)의 시집 3권을 읽은 날
* 두 눈에 눈물이 없다면 영혼에 무지개도 뜨지 않는다. --- 인디언들의 속담
The soul would have no rainbow if the eyes had no tears
---Native American Prover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