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17
어제:
463
전체:
5,065,547

이달의 작가
제1시집
2008.05.09 13:44

당신, 웃고 있나요?

조회 수 313 추천 수 2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당신, 웃고 있나요?


                                                                   이 월란




사람들은 아파서 웃어요
내가 아파보니 웃음이 나더군요
내가 서러워보니 웃음이 나더군요
많이 많이 울고 나면 그 때서야 비로소 웃음이 나더군요


욕망이 타고 남은 재가 아파서 웃었고
여기저기 긁히는 소리, 한 입안에 마주하고도 엇갈리는 이빨처럼
사람들이 부딪히는 그 금속성의 소리가 소름끼쳐 웃었고
무지했음에 더욱 용감해졌음이 아파서 웃었고
끝을 봐야 부서져내리는 교만의 파편들이 아파서 웃었고
페이퍼 컷(paper cut)처럼 묘하게 신경 건드리는 어리석음이 아파서 웃었고
클로즈업 되어 오는 운명의 손길이 두려워서도 차라리 웃었지요


이제 운명의 수술대 위로 나를 들어 올리세요
나의 교만이 오를 차례인가요?
나의 탐욕이 오를 차례인가요?
나의 위선이 오를 차례인가요?
나의 위증이 오를 차례인가요?


자, 나를 가르세요
생리혈로 매장된 앙큼한 생명들 미리 미리 긁어내어 주시고
단무지같은 노란 본능의 살점, 순수의 알콜로 소독된 메스로 저며주세요
생후 7일 전의 무통의 단계에서 목을 조르시고
자라나는 악령의 싹들을 뿌리채 뽑아 주세요


반토막이 잘려나가도 독선의 배앓이로 꿈틀대는 벌레처럼
상처 위에 소금 뿌려대는 운명의 손으로
완강히 저항하는 어깨를 골반 아래로 주저 앉혀 주세요


사람들은 아파서 웃어요
사는게 아프대요


인육(人肉)에 맛들인 운명의 혀로
오늘도 저 천진한 하루해를 동에서 서로 간단히 옮겨 놓으세요
우린 순한 양처럼 일어나고 잠자며
푸른 잔디 위에서 대본 없는 연기를 오늘도 출중히 감당해 낼테니까요


박수를 쳐 주세요
저 배부른 창고 안에서 운명의 장난감이 째깍째깍 태엽을 감고 있잖아요


당신, 웃고 있나요?

                                                                          2007-07-11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31 제1시집 바람서리 이월란 2008.05.09 334
230 제1시집 동굴 이월란 2008.05.09 343
229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이월란 2008.05.09 402
228 유리기둥 이월란 2008.05.09 387
227 제1시집 바람의 길 2 이월란 2008.05.09 352
226 그 여자 이월란 2008.05.09 322
225 꽃상여 이월란 2008.05.09 333
224 제1시집 저 환장할 것들의 하늘거림을 이월란 2008.05.09 327
223 제1시집 바람의 길 이월란 2008.05.09 381
222 제1시집 삶은 계란을 까며 이월란 2008.05.09 419
221 제1시집 빈가지 위에 배꽃처럼 이월란 2008.05.09 385
220 누전(漏電) 이월란 2008.05.09 355
219 제1시집 살아도 거기까지 이월란 2008.05.09 334
218 제1시집 파일, 전송 중 이월란 2008.05.09 384
217 제1시집 새벽길 이월란 2008.05.09 298
» 제1시집 당신, 웃고 있나요? 이월란 2008.05.09 313
215 제1시집 꿈길 이월란 2008.05.09 319
214 어느 시인 이월란 2008.05.09 332
213 실내화 이월란 2008.05.09 279
212 기억 이월란 2008.05.09 342
Board Pagination Prev 1 ... 67 68 69 70 71 72 73 74 75 76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