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이 월란
네뚜리로 비벼진 현실은 낯선 타인의 눈빛으로 서 있었고 늘품 좋은 허망한 꿈만 싣고도 수유리 종점을 향해 덜컹대며 잘만 달리던, 빈 버스 뒷자석에서 흔들리던 육신. 무엇이 그리도 허망했으며 무엇이 그리도 절망스러웠으랴. 빈 몸뚱이 달랑 매고 기억을 수장시키며 천리길을 밟았을 때 내일을 모른다는 건 차라리 축복이었다.
산다는 건 날 향해 정면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는 것, 숨이 꺽꺽 넘어가더라도 다 마셔내야만 하는 바람. 바람세따라 돛을 달고 바람세따라 물결치며, 바람세 험상한 날 가루를 팔러 나가기도 했었지. 날 후려치고 가버린 바람, 한숨 돌리며 뒤돌아 볼 여유도 없어, 속도를 알 수 없는 새 바람은 지금도 불어닥치고 있음에. 남들처럼 똑똑치도 못해, 남들만큼 야무지지도 못해. 단 한번 피고 지는 세월의 꽃들을 겁도 없이 댕강댕강 꺾어내며 허망한 걸음들을 휘적이며 참, 의미도 없이 옮겨놓은 시간들. 다시 돌아간대도 똑같은 길을 걸어올 것을. 그 분이 준비하신 내 최상의 길임을 의심할 배짱도 이젠 남아있지 않은 내게
가끔은, 아주 가끔은 허망을 싣고 절망에 흔들리던 그 수유리 종점버스가 덜컹거리며 뿌연 홍진 일으켜 앞을 가리고 미물처럼 매어달린 하얀 성에꽃, 눈물만 방울 방울, 이슬이라 흘러 내렸지. 열꽃 흐드러지게 핀 이마 댄 차창 밖으로
2007-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