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58
어제:
276
전체:
5,028,752

이달의 작가
2008.05.09 14:07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조회 수 400 추천 수 38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월란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서슬 퍼렇게 달려들던 아귀다툼, 노을 속에 순하게 잦아들 때면
널러 빠진 잠자리가 아닌 솔아 터진 소파 가장자리에 쪼그리고
눕고 싶을 때가 있다
새로 산 레이스 화려한 잠옷이 아닌 보풀 가득 피어난 오래된 파자마를 입고
어느 날 한 평 땅아래 가지런히 누일 빈몸, 차마 낯설지 않도록
그렇게 눕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옮겨놓지 않으면 움직일 줄 모르는
내 하루의 간객으로 즐비하게 세워둔,
언젠가는 나처럼 버려질 가구와 장식품들이
참담히 고개 숙인 낯익은 길체마다
하나 둘 눈을 맞춰오겠지, 속삭여오겠지
살아 있음이라 눈시울 적셔 오겠지
물어뜯고 말리라던 그 날카로운 이빨들도
여섯 살 박이 아이의 젖니처럼 흔들리다
연륜으로 견고해질 영구치 하나씩 그 자리에 돋아나겠지
그렇게 가여운 몸짓으로 누워있다보면
내 안에 아픈 것들도 넉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서로 마음을 내어 너그러워도 지겠지
치고 받던 그 극성들이 정적을 물고 최면을 걸어도 오겠지
구석으로 얼키설키 내몰았던 칡덩굴 반근(盤根)들이
몸 밖으로 하나 둘 걸어나와 타인이 되어 나를 바라보다
진솔 버선되어 반닫이 속으로 차곡차곡 걸어들어 가겠고
이유 없이 목이 말라 올 것이며 손발도 저려 오겠지
다 살아있음이라 세운 힘줄 다독이며 겨울바람에 부르튼 노숙의 마음
그렇게 녹이며 사는거라 한숨 꺾어 주겠지
잠재워 주겠지


                                                                  2007-07-27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91 기억색 이월란 2008.09.18 309
490 기억과 사진 이월란 2010.05.21 369
489 기억 이월란 2008.05.09 335
488 기아바이 이월란 2009.02.14 384
487 견공 시리즈 기묘한 족보(견공시리즈 34) 이월란 2009.09.29 379
486 기도 2 이월란 2009.11.21 331
485 기도 이월란 2009.07.29 272
484 기다림이 좋아서 이월란 2010.03.22 417
483 기다림에 대하여 이월란 2008.05.10 282
482 견공 시리즈 기다림 4 (견공시리즈 125) 이월란 2012.08.17 270
481 기다림 2 이월란 2010.04.13 356
480 기다림 이월란 2008.05.09 328
479 금치산녀 이월란 2009.08.29 503
478 금단의 열매 이월란 2014.06.14 539
477 금단(禁斷) 이월란 2010.04.18 416
476 근시안 이월란 2009.05.09 267
475 견공 시리즈 그저, 주시는 대로(견공시리즈 80) 이월란 2010.08.22 393
474 그립다 말하지 않으리 이월란 2008.05.08 385
473 그림자숲 이월란 2009.04.05 250
472 그림자 숲 이월란 2010.08.08 452
Board Pagination Prev 1 ... 54 55 56 57 58 59 60 61 62 63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