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65
어제:
183
전체:
5,021,049

이달의 작가
2008.05.10 10:39

옛날에 우린......

조회 수 408 추천 수 2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옛날에 우린......


                                                                                  이 월란




옛날에 우린
성냥개비로 막 싸놓은 똥을 찍어 습자지같은 채변 봉투에
담아 나란히 기생충검사를 받았었지
언 손을 호호 불며 조개탄과 물주전자를 나르는 당번을 번갈아 맡았었고
교실 마룻바닥에 줄지어 엎드려 초를 문지르며 무르팍 닳도록 윤도 내었지
분식의 날인 수요일이면 밥 대신 빵을 꼭꼭 씹어 먹었고
김칫국물 배인 교과서 귀퉁이에 코를 박으며 오뎅볶음 반찬을 찾아
양은 도시락을 들고 삐걱거리는 어항 속을 굶주린 열대어처럼 헤엄쳐 다녔지
국민교육헌장과 국기에 대한 맹세를 달달 외우며 애국의 길을 배웠고
욕 잘하시고 잘 때리시던 선생님 앞에선
같이 가슴을 졸였고 같이 부끄러워 얼굴 붉혔었지
아~~ 세월은 무량히 갔어도
초록 나무책상 위에 연필깎기 칼로 금을 그어대며 전쟁을 선포했던 우린
삼십년 세월을 보낸 후 무작스럽게 튀어나오는 똑같은 경상도 사투리에
적진에서 아군의 암호를 확인한 듯 한 순간에 영원한 휴전을 선포했네
나의 얼굴은 잊었어도 너의 얼굴에서 지난 세월을 찾았네
나의 가슴은 잊었어도 너의 가슴에서 웅크리고 앉아 숨쉬는 유년을 보았네
일기장에 찍힌 빨간 확인도장처럼
너와 나의 가슴에 똑같이 찍혀버린 회한의 자국들, 추상의 그림자들
얼굴 마주보면 우린 열 두 살 소년 소녀로 둔갑해버리는 늙어가는 자동인형
나이값도 못하는 백치가 되어도 그냥 행복해, 마냥 즐거워
눈부신 어린 날의 가슴, 너와 나의 만남 속에서 콩닥콩닥 자라고 있네

-- 한국에 갈 때마다 행복의 순간들을 끊임없이 안겨주는 초등모임 친구들에게 --
                                                                                    
                                                                                    2007-12-20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51 영문 수필 Media and Politics 이월란 2010.12.14 174983
1650 영시 A Full Belly 이월란 2016.08.16 172706
1649 영시 E.R. God 이월란 2016.08.16 104178
1648 영시 A Tribe of Amen 이월란 2016.08.16 102586
1647 영문 수필 "A Call to Action: Turning Oppression into Opportunity" 이월란 2011.05.10 96233
1646 영문 수필 Stress and Coping 이월란 2011.07.26 78126
1645 영시 Persona 이월란 2016.08.16 77729
1644 영시 GI Bride 이월란 2016.08.16 76457
1643 영문 수필 Empathy Exercise 이월란 2011.07.26 76127
1642 영시 House for Sale 1 이월란 2016.08.16 71875
1641 영시집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 이월란 2011.05.10 71519
1640 영문 수필 Go Through Disability 이월란 2013.05.24 46296
1639 영문 수필 Love in the Humanities College of Humanities 이월란 2014.05.28 40101
1638 영문 수필 Interview Paper 이월란 2014.05.28 39800
1637 영문 수필 IN RESPONSE TO EXECUTIVE ORDER 9066 이월란 2013.05.24 36882
1636 영시 Fall Revolution 이월란 2016.08.16 36200
1635 영문 수필 Blended Nation 이월란 2013.05.24 26321
1634 영시 The Time of the Cemetery 이월란 2016.08.16 25299
1633 영문 수필 Nation, Language, and the Ethics of Translation 이월란 2014.05.28 25010
1632 영문 수필 Nonverbal Effectiveness 이월란 2011.07.26 24253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