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59
어제:
276
전체:
5,025,581

이달의 작가
2008.05.10 11:28

기억이 자라는 소리

조회 수 239 추천 수 1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기억이 자라는 소리


                                                                        이 월란




기억을 낳았다 하혈 한 방울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으로 머리카락 성긴 그 두상을 내밀었을까
남루한 영혼에 기생하는 기억은 때로
망막에 비친 호숫물만 마시고도 쑤욱 자란다
애저린 휘파람 소리를 뗏목처럼 타고 누워 자라기도 하고
풍향계가 가리키는 저 바람의 골을 따라
국경의 봄을 먹고 자라기도 하고
햇살이 맥박처럼 뛰고 있는 저 창가에 몸을 누이고 두근두근
붉은 심장 만하게 자라 있기도 한다
제라늄 꽃잎 아래 벌레처럼 오물조물 모여 자라기도 하고
막비를 물고 검은 새떼처럼 날아오기도 하는 저 기억들
그렇게 한 순간 내 키보다 더 훌쩍 자라 있을 때
새벽 한기같은 기억의 그늘에 앉아 울기도 했었나
기억은 그 큰 몸집으로도 날 달래주지 않는다
드라이브인 극장의 대형 스크린처럼 생생해도
필름 속에 갇혀 있어, 입이 없어,
한번씩 꼭 하고 싶은 말이 생길 때마다
온 몸을 부딪쳐 창을 두드리는
저 지친 겨울의 진눈깨비로 밖에 태어나지 못하는 기억들
가슴이 도려내어져 뻥 뚫린 상체를 끌어안고 서 있는 기억들
어느 한 구석 몸저림이 올 때까지 눈을 맞추다
급히 돌아서는 기억의 몸은
수수억년의 능선 너머로 전생의 잔상인 듯
푸른 고요를 토해 놓고 손금같은 길을 한 순간에 거쳐
다신 돌아오지 않을 듯 소실점으로 멀어져 간다
놓아 준 기억 밖에 없는데, 놓은 자리, 파묻은 자리
더 깊은 내 가슴 속이었음을
기억의 태반에 씨를 뿌린 바로 나의 가슴 속이었음을
파랗게 날 세운 불립문자 한 조각에 가슴이 벤 후에야
아픈 머리채를 흔들며 돌아서는 기억

                                            
                                                                   2008-01-30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11 간헐천 이월란 2008.09.13 218
1310 갈증 이월란 2010.06.07 422
1309 갈피 이월란 2010.11.24 346
1308 제3시집 감염자 이월란 2011.01.30 441
1307 감원 바이러스 이월란 2008.11.04 243
1306 강촌행 우등열차 이월란 2010.06.07 662
1305 같이 이월란 2008.05.10 220
1304 제3시집 개 같은 4 (견공시리즈 124) 이월란 2012.08.17 245
1303 견공 시리즈 개(견공시리즈 70) 이월란 2010.06.12 416
1302 개가(改嫁) 이월란 2009.02.08 268
1301 제3시집 개같은 3(견공시리즈 54) 이월란 2010.02.15 388
1300 견공 시리즈 개같은(견공시리즈 2) 이월란 2009.05.30 434
1299 견공 시리즈 개같은2(견공시리즈 42) 이월란 2009.10.14 292
1298 개그 이월란 2010.07.19 422
1297 견공 시리즈 개꿈(견공시리즈 66) 이월란 2010.06.07 413
1296 개작(改作) 이월란 2009.03.21 241
1295 갱신(更新) 이월란 2008.05.09 313
1294 제3시집 거래 이월란 2009.04.17 306
1293 거부 이월란 2008.05.09 282
1292 거울 이월란 2009.12.03 332
Board Pagination Prev 1 ...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