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65
어제:
184
전체:
5,020,690

이달의 작가
2008.08.10 12:41

읽고 싶은 날

조회 수 229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읽고 싶은 날


                                                                                        이 월란
  



시는 여백이 말을 한다
정작 하고 싶은 말들은 끝내 손끝으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언제 다녀갔는지 자판 위에 발자국으로만 찍혀 있다
까만 글자는 눈 감고 누워 있는데 눈밭같은 하얀 여백이 뒤척인다
점 8분음표 하나 찍혀 있지 않은데 행간마다 노을빛 가락이 춤을 춘다
아득한 곳에서 몰려오는 소슬소슬 숲소리
맴맴 맴을 돌다 풍덩 빠지고 마는 비밀한 언어의 늪
이 저릿한 감각이 무디어질 때까지 난 질투의 노예가 되기를 비겁해 하지 않는다
탐닉하는 시어의 골목길을 숨 가쁘게 달려가다 부딪히는 벽마다
벌건 가슴 한 줌씩 흘려 놓고서야 내가 보인다
자간마다 에돌아 흐르는 물소리 들어보고서야 세상이 짚인다
선한 눈물강 흘려 보내고서야 검은 연기 흩날리는 환속의 기차를 탄다
난잡했던 몸부림이 살아 온 흔적이었음을 부인하지 않기로 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산다는 것이 죄송한 날
내 못된 영혼의 족쇄가 끊어진다, 창백한 자유인
돌아오는 길을 익혀 두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름도 없이 내게 온 당신, 온 세상이 당신의 이름이란다
간사한 나는 매일 오늘처럼 가혹한 날은 없다고 우겨왔는데
먼 사람 하나 지어놓고 빈 새장같은 가슴 속을 훨훨 날아다닌다
끝내, 봉인된 편지 하나 유서처럼 바람에게 전해 주고서야
가녀린 생명 한 줄기 부여받은 암종같은 글 한 줌
나의 몸 속을 걸어 나온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단다
읽고 싶은 날이다

                                                                                  2008-08-10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1 꽃덧 이월란 2008.05.10 297
510 꽃담배 이월란 2012.04.10 457
509 꽃그늘 이월란 2008.05.10 256
508 꽃, 살아있음 이월란 2008.06.07 235
507 꽃, 거리의 시인들 이월란 2008.05.10 324
506 깡패시인 이월란 2010.01.07 460
505 제2시집 까막잡기 이월란 2008.09.16 280
504 제2시집 김칫독을 씻으며 이월란 2008.06.03 228
503 시평 김기택 시평 이월란 2016.08.15 135
502 길치 이월란 2009.12.15 294
501 제1시집 길손 이월란 2008.05.09 321
500 길고양이 이월란 2009.12.03 401
499 길고양이 이월란 2014.05.28 348
498 이월란 2010.07.09 411
497 기회는 찬스다 이월란 2011.07.26 259
496 기적 이월란 2010.05.02 358
495 기우杞憂 이월란 2011.01.30 498
494 기억이 자라는 소리 이월란 2008.05.10 239
493 기억의 방 이월란 2009.01.27 298
492 기억의 방 이월란 2010.08.08 390
Board Pagination Prev 1 ...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