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43
어제:
463
전체:
5,065,573

이달의 작가
2008.08.10 12:41

읽고 싶은 날

조회 수 230 추천 수 17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읽고 싶은 날


                                                                                        이 월란
  



시는 여백이 말을 한다
정작 하고 싶은 말들은 끝내 손끝으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고
언제 다녀갔는지 자판 위에 발자국으로만 찍혀 있다
까만 글자는 눈 감고 누워 있는데 눈밭같은 하얀 여백이 뒤척인다
점 8분음표 하나 찍혀 있지 않은데 행간마다 노을빛 가락이 춤을 춘다
아득한 곳에서 몰려오는 소슬소슬 숲소리
맴맴 맴을 돌다 풍덩 빠지고 마는 비밀한 언어의 늪
이 저릿한 감각이 무디어질 때까지 난 질투의 노예가 되기를 비겁해 하지 않는다
탐닉하는 시어의 골목길을 숨 가쁘게 달려가다 부딪히는 벽마다
벌건 가슴 한 줌씩 흘려 놓고서야 내가 보인다
자간마다 에돌아 흐르는 물소리 들어보고서야 세상이 짚인다
선한 눈물강 흘려 보내고서야 검은 연기 흩날리는 환속의 기차를 탄다
난잡했던 몸부림이 살아 온 흔적이었음을 부인하지 않기로 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 산다는 것이 죄송한 날
내 못된 영혼의 족쇄가 끊어진다, 창백한 자유인
돌아오는 길을 익혀 두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름도 없이 내게 온 당신, 온 세상이 당신의 이름이란다
간사한 나는 매일 오늘처럼 가혹한 날은 없다고 우겨왔는데
먼 사람 하나 지어놓고 빈 새장같은 가슴 속을 훨훨 날아다닌다
끝내, 봉인된 편지 하나 유서처럼 바람에게 전해 주고서야
가녀린 생명 한 줄기 부여받은 암종같은 글 한 줌
나의 몸 속을 걸어 나온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분다, 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단다
읽고 싶은 날이다

                                                                                  2008-08-10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11 제2시집 자해 이월란 2008.09.01 210
510 제2시집 할러데이 편지 이월란 2008.08.31 261
509 포이즌(poison) 이월란 2008.08.30 265
508 흔적 이월란 2008.08.28 285
507 산불 이월란 2008.08.27 276
506 영시 The Leaning Tower of Pisa 이월란 2010.06.18 550
505 제2시집 모하비 이월란 2008.08.26 804
504 몸 푸는 사막 이월란 2008.08.25 307
503 제2시집 밤비행기 이월란 2008.08.24 268
502 제2시집 분신 이월란 2008.08.13 221
501 제2시집 동거 이월란 2008.08.12 237
500 제2시집 탈놀이 이월란 2008.08.11 250
» 읽고 싶은 날 이월란 2008.08.10 230
498 제2시집 이월란 2008.08.09 241
497 제2시집 입추 이월란 2008.08.08 320
496 이월란 2008.08.07 282
495 캄브리아기의 평화 이월란 2008.08.05 264
494 부산여자 이월란 2008.08.04 269
493 연애질 이월란 2008.08.03 241
492 제2시집 빈방 이월란 2008.08.02 294
Board Pagination Prev 1 ... 53 54 55 56 57 58 59 60 61 62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