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비행기
이 월란
나태했던 지상의 나이를 되짚어 보면 별만큼이나 멀어진 미세한 지표의 파편들이 가슴께에서 결린다. 은익의 프로펠러는 심장보다 더 뜨겁게 달구어져, 손바닥만한 차창 속에서 무엇이 그토록 뜨거워 팔짝 팔짝 뛰었고 무엇이 그토록 안타까워 뜬풀처럼 뿌리 없이 하늑거렸는지. 속도가 감지되지 않는 세월을 역행하며 불야성같은 생의 근육이 불끈 불끈 솟아 아직 발내리지 못한 태초의 어둠 속에 새겨지지 않는 그림자를 새기고.
빛무리 숨어 있을 하늘굽 돌고 돌아도 간절해지는 이 높이, 안타까워지는 이 거리(距離), 투명한 계곡의 비밀한 하늘길을 밟으며 타자마자 선반 위의 얇은 담요를 찾아야 하는 등줄기의 오한은 보행의 이력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흔들릴 때마다 민소매 아래 좁쌀처럼 돋는 시린 목숨, 까만 생머리같은 밤을 참빗같은 기억으로 빗어내리며 경고 한마디 없이 시차의 벽을 관통했다. 한 시간을 잃었다.
세월은 아득한 높이에서 무엇인가 잃어가는 것. 빈 손에 익숙해져 가는 것. 밤의 텍스트 가득 시름의 촉수를 거두면 그리움도 이제 하강하는가. 착륙 후 되찾아야 할 여행가방 가득 다시 채워져 있을 생의 무게도 이리 잊어가는가. 활주로 등을 따라 뜨거운 엔진이 꺼지면 트랩이 붙여진 문으로 파일을 남기고 아득한 활주로에 불시착을 시도하는 행려의 꿈을 점점이 찢어 날리며 영영 내려가지 못할 사람처럼 목을 늘이는데 내가 잃어버린 한 시간을 버텨 온 저 캄캄한 땅엔 살아있는 별들이 감꽃처럼 소복이 자라고 있다.
2008-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