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즌(poison)
 이 월란
결코 독소를 섭취한 적은 없다. 늘 몸에 좋다는 것들만 입에 넣었고 부담 없이 부드러운 것들만 술술 삼켰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장이 꼬집히는 듯한, 어느 핏대줄 하나 당기고 당기다 절단 되어버린 듯한 통증이 왔다. 독(毒)은 무시무시한 자생능력이 있어 나의 파리목숨을 넘보지 않고서도 거뜬히 연명해 나간다.
공생의 연막작전은 이제 어느정도 먹혀 들어가고 있다. 말초적인 사디즘이나 마조히즘까진 아니더라도 곤충의 변태같은 화려한 변신을 꿈꾸며 세월의 이력은 고통도 즐김의 대상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한번씩 해독제를 마약처럼 삼키고 늘어져 보지만 생명이 빠져나간 듯 찾아오는 무기력증은 우리가 늘 싸워야만 하는 고달픈 운명의 주인공들로 지음받았기 때문이라고 아직 도장밥도 마르지 않은 계약서 말단의 사인을 눈 앞에 들이대는 것이다.
창과 방패는 이제 육손처럼 떼어낼 수 없는 몸의 일부가 되어 나의 두 손에 달려 있다. 아직 면역이 되지 않은 혈맥마다 기웃거리며 한 줌씩의 악심을 품어 놓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진 몸길을 뱀독이 질주하고 있다. 죄가 등에 올라타야만 엎드리는 육신마다 말간 독즙이 몸 속에서 새처럼 수시로 짝짓기를 하는 밤, 해가 뜨면 두 눈 가득 반짝 반짝 알들이 슨다.
 2008-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