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349
어제:
265
전체:
5,022,603

이달의 작가
2009.01.02 04:31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

조회 수 731 추천 수 2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


                                                                                                                    이월란



우린 동갑이다. 중년의 위기를 갑장답게 똑같이 맞이했다. 까무룩한 늪 속으로 빠져들며 서로를 응시하다 음산하게도 짧은 미소를 주고 받은 후 그는 모터사이클 한 대를 뽑고 난 詩를 쓰기 시작했다


몇 번을 타겠다고 저 비싼 장난감을...... 한적한 차고 구석에 걸거치지 않도록 얌전히도 세워놓은 그 괴물을 볼 때마다 나는 한동안 속이 쓰렸다. 그는, 굳어버린 좌상처럼 랩탑 앞에 앉아 있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지나갈 때마다 머리카락을 한 번씩 잡아당겼고 난 물론 살아있어서 하얗게 눈을 홉떠 보이곤 했다


이 추운 겨울에 왜 귀가 시뻘개지도록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인지, 아무도 사보지 않는 저 요상한 책을 왜 또 낸다는 것인지 우린, 고개가 좌우로 꼬이다 꺾어지기 일보직전 귀신에 홀린 듯 서로에게 철이 번쩍 들곤 했다.


찬바람으로 주욱 뻗은 백지가 너덜너덜 파지가 될 때까지 그도 두 바퀴의 스피드로 부릉부릉 詩를 쓰고 오는 것임을, 가만히 앉아서도 시향의 클라이막스를 오르락 내리락 500cc 오토바이를 타고 詩의 행간을 돌아다니는 것임을 우린 서로 간파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노년의 위기가 오기 전에 그는 나의 사랑시 하나를 골백번이라도 연습해서 정확한 발음의 낭송으로 내게 바쳐야 할 것이며, 나는 뜨거운 바람이건 차가운 바람이건 눈썹이 휘날리도록 속력을 내는 그를 (빨간 헬멧 아래 두 눈을 찔끔 감고서라도)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뒤에서 끌어안아줘야 할 것임을 어렴풋이, 그리고도 선명히, 화성과 금성의 육감으로 꿰차고 앉아 있게 된 것이다.

                                                                                                              2008-12-28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071 눈(雪)이 무겁다 이월란 2008.12.26 418
1070 가슴에 지은 집 이월란 2009.01.02 308
» 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 이월란 2009.01.02 731
1068 지그재그 지팡이 이월란 2009.01.02 271
1067 포스트들이 실종되는 것은 일상다반사 이월란 2009.01.07 257
1066 스팸메일 이월란 2009.01.07 273
1065 비의 역사 이월란 2009.01.07 300
1064 해동(解凍) 이월란 2009.01.13 308
1063 걸어오는 사진 이월란 2009.01.13 342
1062 포츈쿠키 이월란 2009.01.15 284
1061 흐르는 섬 이월란 2009.01.15 278
1060 제3시집 詩멀미 이월란 2009.01.15 269
1059 사랑 8 이월란 2009.01.15 280
1058 CF* 단상 이월란 2009.01.15 274
1057 줄긋기 이월란 2009.01.15 402
1056 오줌 싸던 날 이월란 2009.01.16 462
1055 증언 2 ---------구시대의 마지막 여인 이월란 2009.01.16 289
1054 연습 이월란 2009.01.19 265
1053 접싯밥 이월란 2009.01.19 280
1052 불시착 이월란 2009.01.22 265
Board Pagination Prev 1 ...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