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라이프 크라이시스
이월란
우린 동갑이다. 중년의 위기를 갑장답게 똑같이 맞이했다. 까무룩한 늪 속으로 빠져들며 서로를 응시하다 음산하게도 짧은 미소를 주고 받은 후 그는 모터사이클 한 대를 뽑고 난 詩를 쓰기 시작했다
몇 번을 타겠다고 저 비싼 장난감을...... 한적한 차고 구석에 걸거치지 않도록 얌전히도 세워놓은 그 괴물을 볼 때마다 나는 한동안 속이 쓰렸다. 그는, 굳어버린 좌상처럼 랩탑 앞에 앉아 있는 내가 죽은 줄 알고 지나갈 때마다 머리카락을 한 번씩 잡아당겼고 난 물론 살아있어서 하얗게 눈을 홉떠 보이곤 했다
이 추운 겨울에 왜 귀가 시뻘개지도록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인지, 아무도 사보지 않는 저 요상한 책을 왜 또 낸다는 것인지 우린, 고개가 좌우로 꼬이다 꺾어지기 일보직전 귀신에 홀린 듯 서로에게 철이 번쩍 들곤 했다.
찬바람으로 주욱 뻗은 백지가 너덜너덜 파지가 될 때까지 그도 두 바퀴의 스피드로 부릉부릉 詩를 쓰고 오는 것임을, 가만히 앉아서도 시향의 클라이막스를 오르락 내리락 500cc 오토바이를 타고 詩의 행간을 돌아다니는 것임을 우린 서로 간파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노년의 위기가 오기 전에 그는 나의 사랑시 하나를 골백번이라도 연습해서 정확한 발음의 낭송으로 내게 바쳐야 할 것이며, 나는 뜨거운 바람이건 차가운 바람이건 눈썹이 휘날리도록 속력을 내는 그를 (빨간 헬멧 아래 두 눈을 찔끔 감고서라도)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뒤에서 끌어안아줘야 할 것임을 어렴풋이, 그리고도 선명히, 화성과 금성의 육감으로 꿰차고 앉아 있게 된 것이다.
2008-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