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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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12.10 14:24

오독(誤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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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誤讀)


                                                                                                            이월란



똑같은 제목의 책과 DVD가 내 앞에 있다. 어,느,것,을,먼,저,볼,까,요,뒷,집,할,머,니,께,물,어,봅,시,다, 장난 칠 여유도 없이 영화를 먼저 보았다. 영화는 146분만에 끝나지만 짜투리 시간을 모아서 읽어야 하는 책은 며칠이 걸릴지 모르니까. 다분히 충격적이고도 파격적인 영화는 장면마다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수시로 기우는 카메라의 앵글 속에서 수십가지의 피사체들이 줌 렌즈 속에서 시시각각 확대되고 축소되는, 직사각형의 스크린 안을 단 몇 초만에 샅샅이 훑어내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눈여겨 보아두어야 할 소품들을 집어 내는 건 순전한 나의 몫이다. 모국어의 자막조차 없다. 제2외국어의 자막을 읽어내느라 주인공의 표정을 놓쳤다. 끔찍한 장면에 현혹되어 이번엔 자막을 놓쳤다. 다음 장면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했던 설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지난 장면에 대한 주인공의 변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르고 지나쳤다고 해서 그리 달라질 건 없지만 진실의 세미한 음성을 얼마나 많이 놓치며, 무시하며 지나왔을까.


(영화를 끝내고 같은 제목의 책을, 첫 페이지를 펼쳤을 때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놓쳐버린 수많은 활자들이 어둠 속에 별처럼 박혀 있었다.)


오늘, 내 삶의 원작은 제대로 연출되고 있는가. 내 멋대로 각색되어지고 있진 않은가. 시나리오는 제2외국어의 자막처럼 정신없이 지나쳐버리고 오진 않았는가. 서투른 배우가 장악해버린 은막의 각본은, 한 페이지 가득 입력되어 있을 영혼의 언어들이 몇 초 상간으로 지나가버리는 무지한 현실의 네 귀퉁이 속에 가두어져 버리진 않았는가. 스크린처럼 멈추지 않고 흘러가고 있는 삶의 장면마다 나의 시선이 놓쳐버리는 원작의 활자들은 얼마나 많을 것인가. 숨은그림처럼 은폐되어버리는 진실의 풍경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덤핑 시나리오처럼 축소되고 생략되어버린 세월 속에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기 전에 감독의 영혼을 한번쯤 훔쳐보고 싶은 것이다. 결코 멈추지 않는 生의 스크린을 향해 리모콘의 pause 란 버튼을 눌러 놓고, 원작의 책처럼 오늘의 페이지를 펼쳐놓고 한 자, 한 자, 눈에 넣어 보고 한 줄, 한 줄, 읽어보고 싶은 것이다. 무자비하게 해독되고 있는 이 순간을 한번쯤 정독해 보고 싶은 것이다.

                                                                                                          200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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