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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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8.12.02 13:25

빨래를 개면서

조회 수 295 추천 수 1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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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개면서  


                                                                         이월란




건조기에서 방금 꺼내어 바닥에 쏟아 놓은 마른 빨래를 나는 좋아한다
따끈히 품고 있는 드라이머신의 열기는 내가 잊고 사는 삶의 체온 같다
팔과 다리가, 후드와 양말이, 펜티와 셔츠가 뜨거운 터널을 통과하며
핏줄보다 더 사납게 엉겨붙은 옷가지들은 한 지붕 아래
한 솥밥을 먹고 산다는 의리 때문인지 아직도 서로를 놓지 못한다


가까이 있어도 그리운 가슴처럼 그렇게, 따뜻하다
두 손으로 감아 쥐고 두 볼에 대어보면
멀어질까 안타가운 마음처럼 그렇게, 또 따뜻하다
찬 겨울길을 종종 달려와, 숨넘어가듯 시린 두 손 헐레벌떡 넣어보던  
저 바다 건너 온돌방이 이처럼 따뜻했었지 않나


손다림질로 보송히 펴지는 구불진 구김살들을 또한 나는 좋아한다
내 옆에서 깊어가는 한 남자의 주름을 닮아 있지 않나
구겨진 하루의 잔상들을 손다림질로 가지런히 펼쳐
명절 아침의 새옷처럼 서랍 속에 차곡차곡 넣어 두는 내일의 옷들
미리 검증받은 비밀처럼 쌓아 두는 것도 나는 좋아 한다


천변의 휴지조각처럼 항간의 땟국물에 절은 소맷자락도  
젖고 마르고 또 젖고 마르는 밤과 낮의 경계에서
물미역 감는 정결의식을 치른 후


반팔 한 쪽 접으며 노을 한 줄기 끼워 두고
뭉쳐진 청바지 주머니 펼치며 달빛 한 줌 넣어 두고
뒤집어진 양말 다시 뒤집으며 별빛 한 가닥 숨겨 두고
시름 엉킨 보무라지 털어내고 기럭아비 같은 안부 한 마디 새겨둔다


난폭한 물살을 거치고, 회전날개의 회오리를 이겨내고
세제의 쓰라림을 견뎌내고, 빙글빙글 마찰의 현기증을 살아낸
얼룩진 눈물과 땀찬 세월까지 탈수된 정갈한 허물들
바람을 뚫고 귀가한 날포랭이들의 외피가 나는 이렇게 좋은 것이다
무늬하루살이들의 환생이 새삼 반가운 것이다

                                                                       2008-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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