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에게*
이월란
휘묻이 한
몸이 줄기가 되고 손발이 잎이 되어
당신 앞에 누워 있고 싶네요
절망 앞에 숨 쉬고 싶네요
무릎을 꺾어버리는 병실 같은 세상 속에
언젠가는 깨어 날 환자이고 싶네요
잠든 하루가 일생이 되어도
폐선이 된 내 몸을 예인선처럼 끌고 갈
사랑이 창살 속에 갇히어도
파도가 사각으로 하얗게 잘린 방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싶네요
어제 오늘 피고 지는 꽃은 아니고 싶네요
꽃 피지 않는 줄기 만으로도
꽃 지지 않는 이파리 만으로도
초록 햇살로 빛나는 그저, 생명이고 싶네요
문병처럼 사랑이 오면 차라리 눈멀어
깊은 병 소리 없이 앓고 싶네요
죽은 아이라도 갖고 싶네요
하얀 시트가 눈처럼 덮이는
병실 같은 세상에서
2008-11-29
* 그녀에게 :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