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雪)이 무겁다
이월란
탈곡 중인 하늘길 가득 허기진 낟알들이 어지럽다
해무를 닮은 눈보라의 도시 가운데 섬으로 갇힐까
우린 눈을 치러 나간다
두툼한 오한의 방수복을 입고 길을 내러 간다
푹신하게 쌓인 눈밭을 반듯한 논밭처럼 갈라놓고
양쪽으로 눈삽을 미는데
삽 가득 밀려 쌓인 눈들이 이리 무거울수가
절명해버린 수정깃털 한 삽은 하얗게 부패된 시신처럼 무겁다
내가 낳은 신생의 체중보다도 무겁겠다
가벼이 내려도 무거워지는 이승의 무게는
하늘에선 가벼이 내려도 지상에선 무겁게 쌓이는 슬픈 역설이겠다
천상에서 받아내린 가벼운 목숨도
너와 나의 손에선 얼음살이 박여 이리 무거워졌을까
초로의 생명도 너테처럼 겹겹이 굳어 이리 모질어졌을까
발자국이 닿지 않는 지붕 위에선, 잔디 위에선, 나무 위에선
이리도 굼뜬 노역을 거치지 않고서도
해무늬 지는 빛 아래 흔적 없이 녹아내릴 것을
밟기 위해 쌓인 눈 속에 땅빛의 길을 뚫어야 하는
천 길 물 속 같은
사람의 앞마당은 오늘도 이리 무거워지는 것임을
뜸길같은 인적을 놓기 위해
이리 휘청이는 삽질이 되는 것임을
2008-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