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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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2009.06.10 14:01

어둠의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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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입



이월란(09/06/10)



빛의 포로가 되어 과업은 실패했다
대사는 끝났다
다음 무대의 배우들이 나의 옷을 벗겨가고 있다
가을나목처럼 나는 혐의를 벗고 있다
공식 없는 답들이 쌓여 있는 입 속으로
나를 부인하기 위해 해체된 나를 조립하면서
연민이 생길 때까지 나를 부정해 본다
고상한 정복자들에게 몸을 바치고
세속화되는 가슴으로, 신성화되는 머리로
파우스트의 신에게 백기를 든다
꽃의 숙명을 닮아가는 지는 잎들의 절규로
잠들지 못하는 어둠의 입은 하품을 치고 있다
유일한 출구는 어둠으로 빚은 찬란한 거울 속 미로
부식 당하지 않는 어제의 말들을 출력해낸
나는 여전히 들키지 못한 역모자
조연급의 꽃들이 여기저기에서 고소장처럼 피어나고 있다
붉은 도장처럼 펄럭이는 꽃의 입을 먼저 처단해 버린다
사실상 나는 결백한 죄인
현기증에 젖은 꽃잎처럼 삶의 절정을 매번 놓치고마는 불감증 환자
허망한 욕정이 묻은 두 손으로 저지르는
수음으로 허기를 모면했을지라도
아삭아삭 나를 갉아먹고 있는 시계초침 소리로
파우스트의 신은 나를 진료 중일지라도
비명처럼 부서지고 벽화처럼 정지되어버리는 나는
지옥의 르네상스를 지금도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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