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8.29 06:47

벌레와 그녀

조회 수 473 추천 수 25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벌레와 그녀



이월란(09/08/26)



내 머리에 이가 바글바글 자라고 있을 때 엄만 참빗으로 머리밑이 파이도록 긁어내셨다 그리곤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엄지손톱으로 톡톡 죽이셨다 날개도 없는 방추형의 이들은 신문지 위에 홑눈으로 쓴 혈서들을 유서처럼 남기고 쭉쭉 뻗었다 나의 비명은 그녀에겐 음악소리에 불과했다 그녀는 날 위해 뭐든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주었다 거미도 개미도 지네도 송충이도 난 내게 이를 옮긴 그 지저분한 아이도 엄마의 손톱 밑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의 피비린내나는 손이 지은 밥을 먹고 자랐다 내가 남편과 결혼한 이유는 벌레들을 잘 잡아죽일 것 같아서였다 과연 그는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는 파리도 휙 낙아챌 정도니 우리가 계속 붙어살 수 있는 건 순전히 이 벌레들이 줄창 나타나주기 때문이다 정말 미울 땐 이처럼 내 몸을 스물스물 기어다니기도 하지만 파리 한 마리 낚아챈 주먹을 높이 들고 호탕하게 웃고나면 다시 인간이 되는 것이다


눈 앞에 거미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다 남편이 올 때까지 따라다니는 방법 남편에게 빨리 오라고 전화를 때리고 적당한 위치에서 투명한 유리컵을 엎어 사형집행 때까지 포로수용소를 임시로 건설하는 방법 그래서 죽을 때까지 반성하게 하는 방법 여러 가지 전근대적인 방법이 있지만 난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택하도록 한다 도시락 싸들고 밤새 따라가는 것 남편은 오늘 야근이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957 철새 이월란 2009.08.25 442
956 견공 시리즈 사타구니를 읽다(견공시리즈 15) 이월란 2009.08.25 707
955 견공 시리즈 막장드라마 2(견공시리즈 16) 이월란 2009.08.25 591
954 견공 시리즈 연적을 위하여(견공시리즈 17) 이월란 2009.08.25 608
953 내 그리움에선 단내가 난다 이월란 2009.08.25 535
952 여행의 방식 이월란 2009.08.25 427
951 견공 시리즈 SOS(견공시리즈 18) 이월란 2009.08.25 711
950 이민 간 팔용이 이월란 2009.08.29 491
949 견공 시리즈 아들아(견공시리즈 19) 이월란 2009.08.29 600
» 벌레와 그녀 이월란 2009.08.29 473
947 밤비행기 2 이월란 2009.08.29 537
946 금치산녀 이월란 2009.08.29 612
945 겨울 갈치 이월란 2009.08.29 733
944 수필 고양이에게 젖 먹이는 여자 1 이월란 2009.09.04 2682
943 화석사냥 이월란 2009.09.12 448
942 수필 라스트 노트 이월란 2009.09.04 1657
941 늪이어도 이월란 2009.09.04 503
940 미련 이월란 2009.09.04 462
939 시한부 이월란 2009.09.04 456
938 견공 시리즈 몸가축(견공시리즈 20) 이월란 2009.09.04 642
Board Pagination Prev 1 ... 33 34 35 36 37 38 39 40 41 42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