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41
어제:
276
전체:
5,028,735

이달의 작가
2009.10.11 09:18

지문(指紋)

조회 수 351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지문(指紋)



이월란(09/10/11)



21년 전 구정이었겠다
태평양을 건너는 비자를 받아놓고, 티켓을 끊어 놓고
엄마는 말랑말랑 굳어가는 흰 떡가래 시루 앞에 나를 앉히며
떡을 썰으라 하셨다
내 어미 가슴 아래 웅크린 생애 마지막 명절이었다
이뿌게 썰거래이, 한석뽀이 엄마처럼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던 삶이 썰어내기 좋을만큼 굳어졌을 때를
엄마는 정확히 알고 계셨다
짓물러가는 가슴살을 현실의 날로 썰어내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계셨다
덜 굳었다면 떡살이 날을 물고 늘어질 것이며
너무 딱딱하다면 아무리 날선 칼도 돌처럼 굳은 기억을 깎아내진 못할 것이다
어쩐지 잘 썰린다 했다
잘려나가는 떡조각들은 생의 바다 한 가운데로
정처없이 버려지는 유년의 짧디 짧은 날들
똑깍똑깍 썰다 나는 왼손 검지 손톱 밑을 칼끝으로 찍고 말았다
가고나모 천날 만날 눈에 밟힐낀데 밟을거 모지라까바
살점까지 썰어놓고 가는기가
손가락을 싸매주시며 내 전신에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시던 손
지금도 남아 있는 반달모양으로 잘린 검지끝 지문이
내 가슴의 현주소를 묻는 지문감식대 앞에 설 때마다  
잘린 기억의 강처럼 흐르다 잠시 멈춰
나를 식별해내는 몸끝 살갗의 무늬
지문보다 더 깊게 골진 칼자국에 일별을 던지는 것인데



?

  1. 지문(指紋)

    Date2009.10.11 Category By이월란 Views351
    Read More
  2. Date2009.12.09 Category By이월란 Views351
    Read More
  3. 귀(견공시리즈 77)

    Date2010.07.09 Category견공 시리즈 By이월란 Views351
    Read More
  4. 잃어버린 날

    Date2008.05.08 Category By이월란 Views352
    Read More
  5. 회명(晦冥) 걷기

    Date2008.05.09 Category By이월란 Views352
    Read More
  6. 돌아서 가는 길은

    Date2008.05.10 Category By이월란 Views352
    Read More
  7. 꿈의 투사들이여

    Date2008.05.10 Category제2시집 By이월란 Views352
    Read More
  8. 붉은 남자

    Date2008.07.04 Category제2시집 By이월란 Views352
    Read More
  9. 아들아(견공시리즈 19)

    Date2009.08.29 Category견공 시리즈 By이월란 Views352
    Read More
  10. Wuthering Heights

    Date2012.02.05 Category영시집 By이월란 Views352
    Read More
  11. Rent-A-Dog (견공시리즈 123)

    Date2012.05.19 Category견공 시리즈 By이월란 Views352
    Read More
  12. 돌보석

    Date2009.04.17 Category By이월란 Views353
    Read More
  13. 테스트

    Date2009.11.16 Category By이월란 Views353
    Read More
  14. 가을귀

    Date2009.11.25 Category By이월란 Views353
    Read More
  15. 편지 4

    Date2010.09.06 Category By이월란 Views353
    Read More
  16. 책이 있는 방

    Date2013.05.24 Category By이월란 Views353
    Read More
  17. 행복사냥

    Date2008.05.09 Category By이월란 Views354
    Read More
  18. 그녀

    Date2010.02.12 Category By이월란 Views354
    Read More
  19. 불가사의(不可思議)

    Date2008.05.08 Category By이월란 Views355
    Read More
  20. 과연,

    Date2010.05.30 Category By이월란 Views35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42 43 44 45 46 47 48 49 50 51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