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71
어제:
447
전체:
5,911,661

이달의 작가
2009.10.11 09:18

지문(指紋)

조회 수 455 추천 수 14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지문(指紋)



이월란(09/10/11)



21년 전 구정이었겠다
태평양을 건너는 비자를 받아놓고, 티켓을 끊어 놓고
엄마는 말랑말랑 굳어가는 흰 떡가래 시루 앞에 나를 앉히며
떡을 썰으라 하셨다
내 어미 가슴 아래 웅크린 생애 마지막 명절이었다
이뿌게 썰거래이, 한석뽀이 엄마처럼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던 삶이 썰어내기 좋을만큼 굳어졌을 때를
엄마는 정확히 알고 계셨다
짓물러가는 가슴살을 현실의 날로 썰어내야 할 때를 분명히 알고 계셨다
덜 굳었다면 떡살이 날을 물고 늘어질 것이며
너무 딱딱하다면 아무리 날선 칼도 돌처럼 굳은 기억을 깎아내진 못할 것이다
어쩐지 잘 썰린다 했다
잘려나가는 떡조각들은 생의 바다 한 가운데로
정처없이 버려지는 유년의 짧디 짧은 날들
똑깍똑깍 썰다 나는 왼손 검지 손톱 밑을 칼끝으로 찍고 말았다
가고나모 천날 만날 눈에 밟힐낀데 밟을거 모지라까바
살점까지 썰어놓고 가는기가
손가락을 싸매주시며 내 전신에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하시던 손
지금도 남아 있는 반달모양으로 잘린 검지끝 지문이
내 가슴의 현주소를 묻는 지문감식대 앞에 설 때마다  
잘린 기억의 강처럼 흐르다 잠시 멈춰
나를 식별해내는 몸끝 살갗의 무늬
지문보다 더 깊게 골진 칼자국에 일별을 던지는 것인데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97 견공 시리즈 목욕타임(견공시리즈 39) 이월란 2009.10.14 509
» 지문(指紋) 이월란 2009.10.11 455
795 수신확인 2 이월란 2009.10.11 400
794 견공 시리즈 닥터 토비(견공시리즈 38) 이월란 2009.10.11 535
793 멍키, 학교에 가다 이월란 2009.10.11 426
792 흑염소탕 이월란 2009.10.08 1115
791 과수원댁 이월란 2009.10.08 462
790 안락한 총 이월란 2009.10.08 397
789 견공 시리즈 한숨동지(견공시리즈 37) 이월란 2009.10.08 571
788 당신은 지금 이월란 2009.10.05 380
787 사각지대 이월란 2009.10.05 380
786 견공 시리즈 혼자 노는 사랑(견공시리즈 36) 이월란 2009.10.05 617
785 견공 시리즈 카스트라토(견공시리즈 35) 이월란 2009.10.01 625
784 사랑이라 부르면 이월란 2009.10.01 392
783 死語 이월란 2009.10.01 400
782 죽어가는 전화 이월란 2009.10.01 429
781 제3시집 구두의 역사 이월란 2009.09.29 1051
780 견공 시리즈 기묘한 족보(견공시리즈 34) 이월란 2009.09.29 544
779 마른 꽃 이월란 2009.09.29 488
778 사랑 9 이월란 2009.09.29 399
Board Pagination Prev 1 ...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 85 Next
/ 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