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댁
이월란(09/10/07)
개가한 엄마 집에 처음 갔을 땐 중학교를 겨우 마쳤을 때였다 동두천으로 흘러들어 양갈보들의 밥을 해주다 기둥서방 하나 꿰찰 때까진 멀쩡한 정신으로 살았나보다 한 번씩 불어제낀 풍선껌 속에서도 둥근해가 솟았을까 밤낮으로 갈아 입던 미니스커트 속으로도 천한 사랑이 들락거렸을까 몸에 붙인 기술이라곤 습자지처럼 깔리는 것, 제주도 여행사진 속에서 남자와 아이가 웃고 있는데 여자는 정신병동 창살을 붙들고 서 있다 개가한 엄마 집으로 다시 들어가 죽을 얻어먹다가, 한 번씩 나오는 발작도 숨기고 가랑이 벌려 배채운 과거도 숨기고 시골 교사출신 홀아비에게로 처음 시집을 갔다 과수원 막일로 전처 자식들 다 키워 장가 보내고도 여자가 낳은 두 번째 아이는 실성한 어미 흔적처럼 어딘가 모자라다 철지난 사과를 한 상자 이고 나와 평화시장 뒷골목 입구에 오롯이 앉았는데 곳간 속 어둠을 견딘 사과가 입양 되었다 파양당한 고아처럼 자꾸만 어딘가 부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