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65
어제:
288
전체:
5,021,716

이달의 작가
제3시집
2010.12.14 06:06

공항대기실 3

조회 수 349 추천 수 4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공항대기실 3


이월란(2010-11)


격납고에 넣어둔 두 개의 인물화는
꺼내볼 때마다 서로를 조금씩 더 낯설어했다
12시간의 비상으로 숙명의 늪을 선회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발급 받은 신분이 이착륙의 수속을 마칠 때마다
상승하고 하강하는 시작과 끝은
언제나 두 발 닿는 게으른 뭍 이었다
바람난 애인처럼 언젠가는 이렇게
아우성치는 군중 밖으로 떠나고 싶었지
저 날개에 실리면 더 높은 곳에 닿으리라 여겼었지
망연한 탈출로 위에는 환한 대낮에도 유도등이 깜빡이는데
어디론가 수송당하지 못해 안달하던 날들에게
주변머리 없는 주변인이 되지 못해 애태우던 날들에게
낯붉히지 않을 날을 그리며
두 손 들고 알몸 투시기를 거칠 때마다
푸른 눈동자들 앞에 서 있을 미래마저 낱낱이 투영 당하고 싶었지
금발의 피가 끓어도 정들지 않는 검은 정수리를 이고
사어死語들이 많은 곳으로 늘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
스스로의 박해를 견디지 못한 도주자가 되어
다시 길들여지고 싶은 야생의 짐승처럼 순하게 줄을 서고 있다
머리만 부유해진 난민들은
들지 못해 끌 수밖에 없는 목숨 같은 가방들을 접수시키고
나름대로 챙겨둔 생의 세금을 포탈하며 면세지역을 통과할 것이다
은빛 동체를 정박시킨 거대한 새들이 차창 밖에서
모이처럼, 늘 그렇듯, 때 늦은 이민가방을 삼키고 있다
지구의 사계절이 모여 사는 환절의 빌딩은
두 개의 혀를 가진 경계인들에게 꽤나 잘 어울린다
폭설로 길이 막혔던 과거를 여권 속에 끼워 넣고
안개마저 망명해버린 해맑은 날
국적도 없는 바람이 텃세를 부린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51 제3시집 공항대기실 2 이월란 2008.10.22 722
» 제3시집 공항대기실 3 이월란 2010.12.14 349
1249 곶감 이월란 2008.05.08 398
1248 과수원댁 이월란 2009.10.08 367
1247 과연, 이월란 2010.05.30 355
1246 관(棺) 이월란 2010.03.05 453
1245 관계 이월란 2011.01.30 495
1244 괄호 속에서 이월란 2009.07.27 316
1243 제2시집 광녀 이월란 2008.05.10 298
1242 광복64주년기념 낭송축시 이월란 2009.08.25 311
1241 견공 시리즈 굄(견공시리즈 104) 이월란 2011.05.31 381
1240 제3시집 구두의 역사 이월란 2009.09.29 531
1239 구신 들린 아이 이월란 2009.02.08 263
1238 국경의 봄 이월란 2009.01.27 302
1237 제2시집 군중 속에서 이월란 2008.07.14 264
1236 굿 이월란 2009.11.11 319
1235 궁상 이월란 2011.10.24 263
1234 견공 시리즈 귀(견공시리즈 77) 이월란 2010.07.09 351
1233 귀도(歸島) 이월란 2009.10.21 305
1232 귀로 이월란 2008.05.10 280
Board Pagination Prev 1 ...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