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대기실 3
이월란(2010-11)
격납고에 넣어둔 두 개의 인물화는
꺼내볼 때마다 서로를 조금씩 더 낯설어했다
12시간의 비상으로 숙명의 늪을 선회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발급 받은 신분이 이착륙의 수속을 마칠 때마다
상승하고 하강하는 시작과 끝은
언제나 두 발 닿는 게으른 뭍 이었다
바람난 애인처럼 언젠가는 이렇게
아우성치는 군중 밖으로 떠나고 싶었지
저 날개에 실리면 더 높은 곳에 닿으리라 여겼었지
망연한 탈출로 위에는 환한 대낮에도 유도등이 깜빡이는데
어디론가 수송당하지 못해 안달하던 날들에게
주변머리 없는 주변인이 되지 못해 애태우던 날들에게
낯붉히지 않을 날을 그리며
두 손 들고 알몸 투시기를 거칠 때마다
푸른 눈동자들 앞에 서 있을 미래마저 낱낱이 투영 당하고 싶었지
금발의 피가 끓어도 정들지 않는 검은 정수리를 이고
사어死語들이 많은 곳으로 늘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
스스로의 박해를 견디지 못한 도주자가 되어
다시 길들여지고 싶은 야생의 짐승처럼 순하게 줄을 서고 있다
머리만 부유해진 난민들은
들지 못해 끌 수밖에 없는 목숨 같은 가방들을 접수시키고
나름대로 챙겨둔 생의 세금을 포탈하며 면세지역을 통과할 것이다
은빛 동체를 정박시킨 거대한 새들이 차창 밖에서
모이처럼, 늘 그렇듯, 때 늦은 이민가방을 삼키고 있다
지구의 사계절이 모여 사는 환절의 빌딩은
두 개의 혀를 가진 경계인들에게 꽤나 잘 어울린다
폭설로 길이 막혔던 과거를 여권 속에 끼워 넣고
안개마저 망명해버린 해맑은 날
국적도 없는 바람이 텃세를 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