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이월란(2011-1)
내 속으로 들어온 그가 나의 장기를 휘젓기 시작한다 황옥빛 해 아래 하나하나 뒤집어 놓았던 것들을 다시 바로잡아 주려는 것일까 끈적한 수액으로 수장시켜버리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심장과 비장은 이렇게 비스듬히 놓여 있어야 해 아픈 게 아니야 좋은 거지 살아봐도 모르겠니 운명의 치사한 장난을, 바다가 물고 있는 한 컵의 단절을 사이좋게 나눠 마시기로 했었잖아 심장 위나 방광의 밑까지 제대로 소화시켜야 해 서로의 배설을 되새김질 한다고 우리의 교배는 부패되지 않아 대갈못이 박힌 곳에 십만 볼트의 전류로 십만 개의 별을 흩뿌리는 꿈을 실현해야지 장기들을 관통한 그가 나의 입 밖으로 분출한다 다시 그의 입을 통해 그의 장기들을 관통해서야 나의 갱도는 잠시 다림줄처럼 곧게 뻗는다 서로의 미로 속에서 탈선해서도 여전히 순결한 이드, 나의 손목에 걸린 코르사주에 그의 심장이 긁히면, 어둠의 반사광에 눈이 찔린 척 까맣게 타들어 가기로 한다 순간의 정복이 영역을 표시해 놓은 열대의 회귀선에서 맞거나 틀리다는 것은 자연의 생각이 아니야 결백한 우리가 만든 거지 우리는 맞는데 저 우주가 틀린 거야 우리는 소란해야 하고 안달해야만 하지 늪가에 굴을 파고 사는 수달이란 놈도 우리처럼 흥분할까 그의 피를 한 움큼 입에 물고서야 잠든다 읽기 쉽고 쓰기 쉽지만 믿기 어려운 사실, 진화는 삶보다 죽음을 더 사랑한다는 사실, 서로의 내장을 움켜쥐고 우린 색골처럼 꼭 끌어안고 자지 서로에게 기생시켜 둔 세포 한 알, 서로에게 유입된 호기성 세균 한 알, 또 다른 내가 되어 꿈틀, 태어나주길 기다리지 어둠의 염료를 산성비처럼 맞으며 밤새 광합성을 하는 꿈을 꾸지 미토콘드리아의 기원을 보란 듯이 증명해내려 짐승이 쪼인 햇살로 식물이 되는 꿈, 우린 원래 원핵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