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인
이월란(2011-1)
믿을 수 없는 외계의 방문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다 지구의 하늘에선 본 적이 없는 불편한 얼굴의 비행체를 우리는 몰래 그리워하고 있다 호모 사피엔스의 두 눈과 파충류의 심장으로 스스로 열을 내어 호흡을 시작한, 모호한 그림자의 잠식을 꿈꾸고 있다 살을 뚫고도 붉은 피가 흐르지 않는 강물 위로, 유독한 고체가 뿜어내는 금속의 광택이 한 번도 마주볼 수 없었던 햇살을 대신해주기를 고대하고 있다 변기 속 배설물의 침전물로 배양된 천상의 박테리아가 탯줄도 없이 허공을 양수 삼아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나 주길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매일 유린당하고 있는 듯 한 착각이 미지의 계산법으로 증명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유리파편처럼 부서져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먼지들의 아우성을 언젠가 확성기 같은 것으로 대변하고 싶은 것이다 은하수의 네비케이터를 타고 언젠가 지구의 무덤 위를 날아보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권을 벗어나 가상의 화면을 연기하고 싶은 것이다 바이킹 탐사선이 찍어 보낸 사진이 모니터 속에서 걸어 나오기를, 해부되지 않은 채로 동굴 벽화 속에서 걸어 나오기를, 납치되지 않은 채로 채팅의 신호를 보내오기를,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름답게 멸망하였노라,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기록되기를 열망하고 있다 그렇게 점령당하기를 매일 바라고 있다 외계인의 봄 속에 꽃처럼 피어나 이 별을 그리워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그 별로 따라가고 싶은 것이다 그 신비한 비행 물체를 빛의 속도로 달려갈 수 있는 서로의 눈 속에서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