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란의 문학서재






오늘:
126
어제:
307
전체:
5,024,487

이달의 작가
제3시집
2010.12.14 06:06

공항대기실 3

조회 수 349 추천 수 4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공항대기실 3


이월란(2010-11)


격납고에 넣어둔 두 개의 인물화는
꺼내볼 때마다 서로를 조금씩 더 낯설어했다
12시간의 비상으로 숙명의 늪을 선회할 수 있다고 믿었을까
발급 받은 신분이 이착륙의 수속을 마칠 때마다
상승하고 하강하는 시작과 끝은
언제나 두 발 닿는 게으른 뭍 이었다
바람난 애인처럼 언젠가는 이렇게
아우성치는 군중 밖으로 떠나고 싶었지
저 날개에 실리면 더 높은 곳에 닿으리라 여겼었지
망연한 탈출로 위에는 환한 대낮에도 유도등이 깜빡이는데
어디론가 수송당하지 못해 안달하던 날들에게
주변머리 없는 주변인이 되지 못해 애태우던 날들에게
낯붉히지 않을 날을 그리며
두 손 들고 알몸 투시기를 거칠 때마다
푸른 눈동자들 앞에 서 있을 미래마저 낱낱이 투영 당하고 싶었지
금발의 피가 끓어도 정들지 않는 검은 정수리를 이고
사어死語들이 많은 곳으로 늘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듯
스스로의 박해를 견디지 못한 도주자가 되어
다시 길들여지고 싶은 야생의 짐승처럼 순하게 줄을 서고 있다
머리만 부유해진 난민들은
들지 못해 끌 수밖에 없는 목숨 같은 가방들을 접수시키고
나름대로 챙겨둔 생의 세금을 포탈하며 면세지역을 통과할 것이다
은빛 동체를 정박시킨 거대한 새들이 차창 밖에서
모이처럼, 늘 그렇듯, 때 늦은 이민가방을 삼키고 있다
지구의 사계절이 모여 사는 환절의 빌딩은
두 개의 혀를 가진 경계인들에게 꽤나 잘 어울린다
폭설로 길이 막혔던 과거를 여권 속에 끼워 넣고
안개마저 망명해버린 해맑은 날
국적도 없는 바람이 텃세를 부린다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71 견공 시리즈 토비의 천국(견공시리즈 25) 이월란 2009.09.12 401
470 견공 시리즈 목방울(견공시리즈 30) 이월란 2009.09.19 401
469 길고양이 이월란 2009.12.03 401
468 VIP 이월란 2010.02.21 401
467 장사꾼 이월란 2010.03.05 401
466 마음 검색 이월란 2010.11.24 401
465 제1시집 부를 수 없는 이름 이월란 2008.05.08 402
464 제1시집 너의 이름은 이월란 2008.05.09 402
463 줄긋기 이월란 2009.01.15 402
462 슬픔의 궤 이월란 2009.06.01 402
461 견공 시리즈 꽃의 알리바이(견공시리즈 29) 이월란 2009.09.16 402
460 애설(愛雪) 이월란 2009.10.17 402
459 쓰레기차 이월란 2010.12.14 402
458 엄만 집에 있어 이월란 2008.05.10 403
457 제3시집 수선집 여자 이월란 2008.10.12 403
456 영시집 Island 2 이월란 2010.06.18 403
455 영시집 A Solitary Cell 이월란 2010.03.13 403
454 제3시집 작은 질문, 큰 대답 이월란 2010.12.14 403
453 진짜 바람 이월란 2010.09.26 404
452 판토마임 이월란 2008.05.08 405
Board Pagination Prev 1 ... 55 56 57 58 59 60 61 62 63 64 ... 83 Next
/ 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