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텃밭
2004.08.25 10:02
아버지가 생전에 받아놓았던 쑥갓, 상치, 아욱 씨들을 텃밭에 뿌려놓았습니다. 쭈그리고 앉아 잡초도 뽑고 물도 주면서 어린 새싹들이 흙을 밀고 올라오는 걸 하루에도 몇번씩 숨죽이고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새끼손톱보다 작은 떡잎들 위에 내려앉은 연초록 햇빛들은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참새 소리로 재재거리기도 하다가 아버지 굽은 등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식구들이 다 나간 빈 집에서 느리게, 혹은 빠르게 자라나는 새싹들과 얘기도 나누며 저무는 시간을 들여다보던 아버지가 내 곁에 앉아 상치는 봄에 먹는 게 더 맛있다고도 하고 아욱국은 장모님이 막내 사위 왔을 때 끓여 내놓는 국이라며 웃으십니다. 아버지보다 먼저 떠난 세 형님들이 하하하하 웃는 소리 뒷뜰에 가득합니다. 아버지가 만나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던 것들이 무엇인지 알겠습니다. 봄날의 따뜻함입니다. 다시 살아나는 죽은 것들입니다. 이제사 나는 아버지를 좀 더 자주 만나고 얘기를 나누게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제가 비로소 아버지가 될 것 같습니다.
-- <현대시> 2002년 7월호
-- <현대시> 2002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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