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그 길은/이재범목사 영전에

2004.11.11 11:20

김영교 조회 수:156 추천:8

마른 눈에서는 모래 바람
마른 가슴에서 갈대우는 소리
마른 뼈들이 금을 내며 주저앉던 투병기간
내 가슴에까지 번져 오던 답답함

살점을 갈기갈기 찢으며
골수에서 치솟던 고통
안으로 안으로 저며 넣를 때
껴안아 주고 함께 손잡아주는 기도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나

부모님의 간곡한 부름에
학위의 잎을 떨구고
목회의 잎도 떨구고
앙상한 겨울나무는 고향으로 뿌리를 옮겨갔다
나는 그를 보내지 않아
그는 아직 여기 있고
여름날의 무성한 잎으로 너풀대는 그리움
성경 페이지를 넘기던 체온이 방안 가득 고여있다

앉았던 자리
그 큰 흔적
말씀을 안고 떠난 젊은 사역자는
갈보리 사랑 그 알갱이로 남아
아픔을 건너 나의 어둠을 어루만지며
말없이 목수의 여광(餘光)을
성서학회 지붕에 비춰 주고 있다

지금 그의 길은 위에 있고
하늘 문 열고 들어가 님의 품에 안긴 그 확신에도
왜 나는 기뻐하지 못하는가
  
38개의 여린 나이테를 남기고 떠난
그 안타까움이 나를 쓰러뜨리고
젖은 흐느낌이 온 몸을 찌른다

작은 내 심장 신음소리에
서서이 깨어나는 나의 의식
순서없는 계단을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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