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전쟁

2005.01.24 11:53

정찬열 조회 수:15

                                     소주전쟁
                                                                  
  미국에 소주가 처음 들어왔을 때, 오랜 친구를 본 듯 반가웠다. 돈을 주고도 소주를 사먹을 수 없던 시절, 누군가 한국에 다녀오면서 소주 한 병을 가져오면 이웃을 불러 나누어 먹을 만큼 소주가 귀했던 그 때, 이제는 마켓에서 값싸게 구입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한국인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것이 점차 미국 사회로 번져나갔다. 그런데 너무 잘 팔리다 보니 지금 미국에서 그 소주 때문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술 소주와 러시아에서 들어오는 보드카가 한 판 승부를 겨루고 있는 중이다.
  발단은 지난 2002년 통과된 소주법 개정안(SB1710)의 통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류통제국(ABC)이 한국의 전통 술 소주를 '하드리커'가 아니라 '비어 앤 와인'으로 분류해 팔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한인 업체들과 커뮤니티의 요구를 들어준 것이다.
  한국소주는 24% 알코홀 제품으로 5%의 맥주나 11-14%의 와인에 비해 강하지만 일반리커인 '비어 앤 와인'으로 분류됨으로서 하드리커 면허가 없는 식당에서도 판매가 가능하게 되었다. 뉴욕시의 경우 하드리커 면허를 받는데 연간 $4,325달러인데 비해 일반리커는 $480로 차이가 크다. 따라서 40% 알코홀 제품인 보드카를 팔려면 비싼 하드리커 면허를 획득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식당에서 취급을 꺼리는 반면 소주는 일반 리커면허로 부담 없이 팔 수 있게 되어 관심을 끌게 되었다. 소주는 정종보다 향이 약한 반면 도수는 높아 칵테일용으로 더 환영을 받았다.  
  이때부터 소주업계의 본격적인 미국시장 공략이 시작했다. 프로그레시브 베버리지회사와 진로소주가 선두주자가 되어 소주를 보드카 대체용으로 광고하면서 미 주류사회의 입맛을 사로 잡아갔다. 프로그레시브사는 한국의 선양주조로부터 자신들의 비법대로 소주를 제조해 보드카와 비슷한 맛이 나도록 만든 술에 '한(HAN)소주'라는 이름을 붙혀 팔았다. 그리고 보드카와 연관성을 높이기 위해 술병도 보드카처럼 투명한 병을 상용했고 흰색 레이블에 금색 테두리를 둘렀다. 진로도 전직 바텐더로 판매팀을 구성해 회사 로고가 새겨진 칵테일 잔 등을 식당이나 술집에 돌리면서 소주 칵테일 제조법을 교육했다. 소주판매가 급속도로 늘어갔다.
  지난 해 7월 '미 주류사회도 함께 즐기는 소주 칵테일'이라는 제목으로 L.A 타임스에 소주가 주류 식당과 술집에서 칵테일 재료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가 게재되었다. 'HAN소주' 사진까지 곁들여 보도됐다.  10월에는 경제전문 잡지인 '포춘'지에서도 소주를 '새로운 보드카'로 격찬했다.
  여기에 북한의 평양소주까지 미국시장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한국산 소주는 주정을 물로 희석해 만드는 희석식인데 반해 북한산은 쌀이나 찹쌀등 곡물을 이용해만든 전통 증류식이다. 미국 애주가들의 선택의 폭이 그만큼 넓어진 셈이다.
민족의 술인 '소주'가 미국 애주가들 사이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다른 형태의 '한류'가 자리잡아간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렇게 소주가 보드카시장을 잠식하게 되자 비어엔 와인이라는 특혜를 없애고 소주를 하드리커로 재분류시켜야한다는 보드카 쪽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제정된 법을 번복시키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움직임에 대항하여 소주쪽도 힘을 모아 쐐기를 박으려고 애쓰고있다. 로비의 천국인 미국, '소주전쟁'의 결말이 어떻게 날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우리의 술 '쐐주'가 이 땅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초기 이민자의 모습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이민 와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도움을 받으며 살던 시절이 떠 오른다. 붉은 셔츠를 입고 축구를 응원했던 때도 생각난다. 오늘 저녁엔 모처럼 친구들을 불러내어 삼겹살집에서 소주 한 잔 해야겠다.<2005년 1월 26일자 광주매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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