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피플을 돕는 사람들

2005.03.15 15:28

정찬열 조회 수:201 추천:1

  

                            
  미국은 부자나라라 홈리스 피플(homeless people)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차가 멈추는 곳에 자그마한 팻말을 들고 한 푼을 적선하는 풍경에서부터 공원 벤치에서 밤을 세우는 사람, 후미진 골목 두꺼운 포장지속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혼자 살아가기도 힘들텐데 개를 거느리고 다니는 홈리스도 많았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조급하지 않고 태평해 보였다. 몇 주 전, 이곳 성당에서 홈리스 피플에게 점심을 제공하는 봉사를 하는데 일손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자원을 했다.
  여러 봉사단체에서 날짜를 정해 그들에게 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다. 식사를 제공할 인원은 백 명 가량. 음식은 봉사자들이 성당 식당에서 직접 만들었다.
  준비한 음식을 싣고 센터에 가니 노숙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봉사자들이 불고기와 쌀밥, 셀러드와 과일, 그리고 감자볶음을 종이 접시에 담는다. 제법 푸짐하고 먹음직스럽다. 홈리스 피플들이 길게 줄지어서 준비된 용지에 사인을 하고 있다. 스페니쉬 사람이 대부분이고 백인과 흑인도 상당하다. 아시안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한국인은 없다. 남자가 대부분이고 여자는 많지 않다.  
  나이 듬직한 사람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일흔 세 살이란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온 아빠도 있다. 아이는 아빠의 바지가랑이를 꼭 붙들고 있다. 나이를 물으니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인다. 엄마는 어디로 갔을까. 이제 갓 서른 살을 넘겼다는 새파란 젊은이는 밥을 세 번이나 타다 먹는다. 오죽 배가 고팠으면 저렇게도 많이 먹을까. 산다는 게 무얼까.  
  식사를 마친, 한 홈리스와 대화를 나누었다. 이름은 알퐁소이며 올해 예순 네 살이라고 한다. 시간만 지켜 이곳에 오면 어김없이 밥이 나온다고 했다. 그리고 나서 쓸쓸하게 웃는다.        
  저만치 작은 테이블에서 두 백인여자가 식사를 하고 있어 말을 걸었더니 친절하게 대답을 해준다. 작달막한 여인의 이름은 매기인데 올해 마흔 두 살. 대학 졸업 후 정부기관에서 오래 일을 했단다. 일년 전 홈리스가 되었는데 결혼은 한 적이 없고 친척도 없다고 했다. 잠은 어디서 자느냐고 물었더니 이곳에서 대 여섯 블락 떨어진 곳에 무숙자를 위한 숙소가 있다고 한다. 목욕과 빨래도 거기서 한다고 했다.
  맞은편 곱상한 여인은 올해 마흔 아홉 살이란다. 칼리지를 졸업한 후 회사에 근무해왔는데 일년 반전에 홈리스피플이 되었다고 했다. 요즘도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일을 한단다. 번 돈은 용돈 쓰기도 부족하여 잠은 무숙자 숙소에서 자고, 먹는 문제는 이렇게 해결한다고 했다. 몸이 아프면 제일 슬프다고 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우리 같은 이민자도 잘 살아가는데 대학까지 나온 사람들이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어 이런 생활에 빠져들었을까 안쓰러운 생각이 든다. 나도 저들처럼 노숙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메니저를 만났다. 가정집 같은 이 건물이 홈리스 피플을 위한 장소로 쓰이는 게 궁금해 연유를 물었더니, 오래 전 어떤 여인이 죽으면서 이 집을 시에 기부하여 이렇게 공공목적으로 유용하게 쓰인다고 했다.  
   켈리포니아의 홈리스 피플 숫자가 36만 명이고 LA카운티만해도 8만 명의 노숙자가 길에서 밤을 새고 있다고 한다. 내가 저들에게 관심조차 두지 않을 때에도, 누군가 저 사람들을 위해 오랫동안 봉사를 해 왔기에 그렇게 많은 홈리스들이 별 문제없이 살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힘든 내 이웃을 위해 도움다운 도움 한 번 주지 못하고 살아온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행여 도망이라도 가버릴까 염려되어서였던지, 아빠 바지끝을 꼭 잡고 따라다니며 칭얼거리던 다섯 살 난 꼬마. 녀석의 그 눈물 그렁하던 눈동자가 눈에 밟힌다. (2005년 3월 16일자 광주매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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