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을 먹으며
2005.04.08 04:23
짜장면을 먹으며/오연희
오빠 월급타는 날은 하루 해가 참 길기도 했다
해가 뉘엿뉘엿 기울면 우리집 기둥인 오빠가 돌아왔다
오빠 뒤를 여동생 넷이 졸졸 따르며 짜장면 집으로 향하는
좁다란 골목길은 천하무적 우리의 것이었다
“ 쭐루리 어데가노?”
젊은 여자한테 남편 뺏기고 혼자사는 옥켜이 엄마가 물었다
“짜장면 먹으로 가예 ”
여자 넷이서 신명난 합창 남긴자리에 그녀의 젖은 그림자
오래 서 있었다
오늘
친구들과 복해루에서 짜장면을 먹었다
요리를 시켜서 실컷 먹고
입 가심으로 짜장면을 주문 했다
세 사람당 한 그릇인데도 짜장면이 남아 돌았다
짜장면 한 그릇 씩 앞에 놓이면 부러울게 없었던
그 맑은 가난이 그립다
입 주위가 짜장으로 온통 범벅이 된 오빠를 보고
동생 넷이 킥킥대면 흐뭇하게 웃어주던 오빠
세번째 기일이 한달 남았다
결국엔 미쳐서 온 동네를 중얼거리다 소리지르다
하루종일 바삐 돌아다니던
옥켜이 엄마는 어떻게 됐을까?
빙글빙글 돌아가는 식탁위에 남은 음식들이 어지럽다
남은 짜장면 위에 웃음소리 울음소리 간간이 배어나고
빙빙 돌아가는 세월에 나도 어지럽다
2005년 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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