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12월24일 '이 아침에'

무심(無心)을 선물 받다
                                            조옥동/시인

매년 12월은 이런저런 모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동안의 안부와 살아온 얘기를 하다보면 서먹함도 잠깐이고 만남이 즐겁다.

동창회에 가면 옛 교정에서 지냈던 추억이 잊혀 진 것도 있으나, 생각 할수록 재미있고 깨끗한 웃음들로 얼굴마다 눈물까지 범벅을 이루는 모습이 아름답다. 비록 동기생은 아니라도  단지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만으로 선후배의 예우가 깍듯이 존중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옛 은사들을 모셔놓고 가슴을 훈훈하게 만든다. 식순에 따라 옛날의 교가를 합창할 때는 꼭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 팔을 힘차게 흔들며 목청을 높여 젊은 기상이 살아난다.

며칠 전 부지런히 세 아이와 손자의 선물을 꾸려 우편으로 부치고 서둘러 대학교 동창회에 가던 길이었다. “여보, 우리가 아무래도 아이들 곁으로 가서 살아야할 것같아.” 갑자기 말을 꺼낸 남편의 목소리가 차창 밖의 회색하늘만큼 가라앉아 있었다.
차창엔 빗방울이 가볍게 떨어지는데 그는 와이퍼를 필요이상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옆얼굴을 언뜻 보니 많이 외롭고 늙어 보였다. 아내인 내가 옆에 있는데도 평소에 밝고 내색을 안 하던 남편이 동부에 모여 사는 아이들이 비즈니스와 직장일로 연말에 오지 못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말을 배운 손자 생각에 그들이 더 그리운 것이다.

사람사이 만남을 겁으로 표현하는 불가에선 세상에서 옷깃을 한 번 스치는 인연도 전생에서 500겁을 산 인연이고, 부부의 인연이 7000겁이라면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8000겁으로 더 깊은 만남이란다. 부부의 인연보다 부모와 자식사이의 인연이 더 깊다는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수긍이 된다. 친구지간 만남도 소중한 인연이다. 백성과 국가원수의 만남도 1000겁의 인연이라니 자기백성을 밥도 제대로 먹이지 못하는 통치자와의 인연은 예수님과 유다처럼 악연이다.

해마다 동창회 참석자가 줄어들고 있다. 동기들 중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 여럿이고 선배들의 모습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대학교 선배 한 분은 90이 넘은 고령인데도 해마다 참석하여 후배들을 격려하고 좋은 얘기로 모임을 따뜻하게 만든다. 미주에서 네 개의 은행을 세우고 행장을 지낸 금융인으로 이름을 말하면 다 알만한 분이다. 서화에도 능해 해마다 작품을 동창회기념품으로 내 놓는데 올해도 그 중에 ‘무심(無心)’이라 쓴 족자 한필을 운 좋게 상으로 받았다. 무심하란다.

뉴욕과 보스턴의 우리 아이들이 부모에게 무심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일에 충실하려고 휴가를 못할 형편이다. 무심이란 흔히 생각하듯 아무것도 없는 텅 빈상태가 아니다.
일 할 때는 열중해서 하고, 세상의 헛된 일에는 마음을 비우는 상태가 무심이다. 바다와 같이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하며, 맡은 일에 책임을 다하는 상태가 무심이란다. 아마도 ‘무슨 일을 하든지 주께 하듯 하라.’는 성경말씀과 일맥상통하는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