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승객, 불안한 국민

2005.10.27 02:22

정찬열 조회 수:22 추천:3

                                                            
   일이 있어 며칠 간 한국을 다녀왔다. 광주에서 일을 마치고 서울에 올라오는 날 새벽, 시외버스 터미널을 가려고 백운동에서 택시를 탔다. 호텔 앞에 정차해 있던 차를 탔더니 운전사가 과속을 하고 정지 신호도 무시하며 그냥 달리는 것이었다. 빨강 색 신호가 켜지면 서는 척하다가 곧바로 내달렸다.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네 번인가 다섯 번인가 신호를 아랑곳하지 않고 달리는 차를 타고 가면서 내심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차는 금방 터미널에 당도했고,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가면서도 오죽 다급했으면 운전사가 저토록 조마조마하게 운전을 할까 측은한 마음이 들었고, 저렇게 신호를 지키지 않다 보면 자칫 사고를 당하기 쉬울 터인데 새파랗게 젊은 사람의 앞날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신호는 사회적 약속이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을 위한 길이라는 단순하면서도 자명한 원리를 그 운전사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신문을 펼쳐보니 마침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는 기사가 일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려있었다. 강모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지시에 대해, 총장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을 수호하는 차원에서 사표를 냈다는 내용이었다.
  신문은 해설기사에서 총장이 사표를 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었고, 사설을 통해 총장의 사표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법무장관이 총장에게 내린 불구속 수사 지시에 관한 내용도 함께 소개되었지만 총장의 사표를 더 크게 다루고 그 쪽을 두둔하는 내용이었다.  
   '6.25전쟁은 통일전쟁이고, 맥아더 장군은 통일을 방해한 원수다'는 강모 교수의 발언은 이곳 미국에서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미주 한인사회에서는 '그런 말도 되지 않은 발언을 한 사람,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시킨 교수를 왜 두고 보고만 있는 거냐'며 현 정부를 향해 불만을 표시하는 사람이 많았다.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뉴스를 보면서 반미를 해야만 한국에선 지식인 대접을 받는다는 어떤 분의 얘기가 떠올랐다. 4만이 넘는 젊은이를 한국전쟁에서 잃어버린 미국인들이 이 보도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가질까 생각하는 동안 맥아더 동상을 미국으로 옮겨오자는 미 의회의 발언이 보도되었다. 한국이 너무 좌향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가 되었고, 조국의 장래가 염려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법무장관의 지시에 대한 검찰총장의 사표가 정당한가, 온 나라가 이 문제로 들썩거리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에 대해선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관의 지시는 적법한 권한행사였다. 도주와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는 사람을 구속까지 하면서 수사할 필요가 없다는 장관의 논리에 하지가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 사안에 대한 최종결정은 어차피 사법부에서 내려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장관이 지시한 대로 총장이 법에 따라 불구속 수사를 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이 없어 보였다. 이 문제를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국민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필지가 국내사정에 어두운 때문인지는 몰라도 재판결과가 나올 때까지 법에 따른 절차를 조용히 지켜보면 될 것을 신문을 도배할 정도로 요동을 쳐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운전사가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고 좌충우돌하면 손님이 불안하고 결국은 운전자도 피해를 입게된다. 법을 잘 아는 분들이 법을 지키지 않고 나라가 여론에 따라 출렁거리면 국민이 불안하고 결국은 나라가 망가지게 된다.  
  법은 약속의 최소한이다. 누구나 법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너와 내가 편안하고 국가가 바로 선다.  
                 <2005년 12월 26일 광주매일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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