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2005.07.21 17:25
몇 시간의 수술이 끝나고 마취 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곁에 아무도 없다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아이 둘을 낳을 때를 포함하여 세 번째 수술을 하게 된 며칠 전,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수술을 하게되는 모든 과정부터 함께 곁에서 도와주고 격려해 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은 역시 배우자가 아닌가 싶다. 아니,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17여년 전 L.A.에서 유태인 할머니가 엄청난 거액의 유산을 어느 한 한국여인에게 물려 준 사실이 밝혀져 한 동안 L.A.가 떠들썩 했었다. 그 액수에 대해서 문제가 되었던 것 보다 그 유산을 받게 된 연유와 그것을 모두 사회복지단체에 고스란히 넘긴 사실이 더 큰 화제거리였었다. 견물생심의 인간적인 욕심을 모두 버릴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
평소에도 수수한 삶을 사시는 김종윤 권사님은 지금도 80이 넘은 노모 한 분을 모시고 사시는데 이따금씩 우리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간다거나 음악회를 가는, 어울리기 마음 편한 독신자이셨다.
어느날, 한국인 마켓에서 병들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외국 할머니가 한국 반찬에 대해 이것저것 묻길래 친절히 대답해 주었는데 그 일이 인연이 되어 가끔씩 그 할머니 집에 반찬도 해다 드리고 말 동무도 해 주게 되었다. '혼자 사는 불쌍한 병든 노인'이라는 이유 한 가지로만 찾아가 돌보게 되면서 할머니가 유태인이라는 것과 가족이 있지만 함께 살지않고 있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몇 해 후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참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려 줄 상속자로 단 한 사람, 자신에게 값없이 친절을 베푼 한국여인의 이름을 법적기록에 올려놓고...
할머니는 병든 쓸쓸한 노년에 당신에게 따스한 마음을 건네준 사람을 가족으로 받아들여 전 재산의 상속자로 택하셨고, 뜻하지 않게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은 권사님은 그 모든 것을 남김없이 사회복지를 위해 사회에 도로 내 놓으셨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볼 줄 알았던 두 분의 삶이, 남남이 서로 만나 가족이 되면서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던 아름답고 감동적인 순간들이었다.
<한국일보 '여성의 창'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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